10일 도쿄돔에서 개막되는 ‘코나미컵 아시아 시리즈 2005’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코나미컵은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국내리그 우승팀이 출전해 아시아 야구의 1인자를 가리는 대회. 한국 대표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일전을 염두에 두고 소집됐지만 31년 만에 우승을 차지해서인지 선수들의 얼굴엔 여유가 넘쳤다.
일본시리즈에서 홈런 3방을 쏘아 올리며 팀 우승에 공헌한 이승엽(李承燁·29) 선수도 1루수 수비 훈련과 프리배팅을 소화하며 땀을 흘렸다.
‘일본시리즈 4차전의 홈런이 정말 멋졌다’고 말을 건네자 “아직 멀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본 진출 2년째이니 작년보다 좋아진 건 당연하지만 칭찬받을 정도는 아니죠. 무엇보다 타율이 너무 낮고….”
이승엽이 올해 정규 시즌에서 올린 기록은 타율 0.260에 홈런 30개, 타점 82점. 지난해(타율 0.240, 홈런 14개, 타점 50점)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시아 홈런왕’의 성적치고는 초라하다. 2년 전 롯데 입단 기자회견에서 장담한 ‘타율 0.290, 홈런 30개, 타점 100점’ 중에서 홈런만 목표를 이룬 셈이다.
“일본에 오기 전엔 ‘공은 둥그니까 어디서 야구를 하든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경기를 해 보니 일본의 야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더라고요. 직구인가 하면 변화구가 오고…. 볼 배합만이 아니라 투수들이 던지는 스타일, 타자들이 치는 방법 등 야구 자체가 달랐어요.”
그는 “한국과 단순 비교는 곤란하지만 일본 투수들은 특히 변화구를 잘 던지고, 타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NHK의 롯데 마린스 담당 기자인 후카가와 류지(深川亮司) 기자는 “작년에 이승엽의 타격을 봤을 때는 저런 타자가 어떻게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웠는지 이해가 안 됐다”며 “일본 투수의 까다로운 구질에 완전히 적응한 것은 아니지만 올핸 서서히 자신의 스윙을 되찾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승엽 본인도 전엔 변화구가 오면 몸이 앞으로 쏠리는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 점을 보완한 게 타격 감각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신감을 갖게 된 사례로 시즌 초반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온 직후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몸쪽 공을 잡아당겨 홈런으로 만든 것과 일본시리즈에서 13구까지 가는 실랑이 끝에 4구를 얻어낸 것을 꼽았다. 예전 같았으면 홈런 대신 파울이 됐거나 삼진으로 물러났을 텐데 끈질기게 승부해 좋은 결과를 내면서 ‘이제 감을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
옛 소속팀과 경기를 치르는 소감을 묻자 그는 “롯데 소속인 만큼 당연히 롯데가 이기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삼성의 선후배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회포를 풀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선 “롯데의 동료들에게 삼성 선수들의 장단점을 설명해 주며 일본 야구의 수준을 믿고 삼성을 얕봤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경고도 전했다”고 덧붙였다.
이승엽의 진로와 관련해서는 롯데 잔류설이 유력하지만 주전 1루수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한 데다 왼손 투수가 나올 때는 빠지는 등 출장 기회가 적었다는 점이 변수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은 센트럴리그로의 이적설과 메이저리그 진출설이 나돌고 있다.
향후 계획에 대해 그는 “지금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주변에선 어느 팀이 될지는 모르지만 내년에도 일본에서 뛰는 것은 정해졌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승엽도 일본 TV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야구에 좀 더 익숙해지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일본 잔류 쪽에 무게를 실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했으니 이제 남은 건 아시아 우승이네요. 2년간 외국에 나와 좌절과 실패도 많이 겪었습니다. 삼성과 멋진 경기를 펼쳐 한국의 팬들에게 이승엽이 일본에 와서 많이 성장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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