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팬은 모순적이다. 국가대표팀 경기에는 4만∼5만명의 구름 관중이 모여도 평소 프로축구 경기장에는 수천 명만이 모여 관중석이 텅 빈 풍경이 연출되기 일쑤다. 축구의 토양은 척박한데도 사람들은 그 불모지 위에서 승리의 영광을 일궈 낼 것만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어느 외국기자는 “한국에 축구팬은 없고 애국자만 있다”고 풍자했다.
이런 가운데 ‘장군’으로 불리는 딕 아드보카트 국가대표팀 감독은 최근 “전지훈련에 불참하는 선수는 2006 독일 월드컵 본선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가대사’를 앞두고 대표선수 차출에 비협조적인 구단은 이기적이라며 비난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발언을 둘러싸고 ‘계엄령’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 같은 상황은 국가와 민족을 전면에 내세워 결속과 단결을 강조하는 ‘전체주의’의 분위기를 풍긴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발언은 우리 국민이 승리에만 목말라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한 데서 나온 것이리라. 축구팬들은 아드보카트 감독이 승리를 위해 단호하게 행동하고 있다며 반기고 있다.
단기적인 승리만을 추구 할 때 아드보카트 감독의 발언은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면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한국축구는 그 토양이 되는 프로축구의 활성화 없이 결코 발전할 수 없다. 모든 축구팬의 관심과 행정 지원이 국가대표팀에만 쏠리는 것은 부작용을 낳는다.
전체주의는 다양하고도 근본적인 논의를 억압한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비판 없는 전체주의는 만에 하나 그 방향이 잘못됐을 경우 파멸적인 결과가 기다린다.
승리를 위해 전진하는 아드보카트 감독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과정에 있어서 차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며 무조건 모든 것을 요구하는 식은 옳지 않다.
그가 한국축구의 영웅이 되기를 바라지만 한국축구의 독재자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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