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말 통하면 게임도 잘 풀린다

  • 입력 2005년 11월 25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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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축구국가 대표팀의 스웨덴과의 평가전. 동아일보 자료 사진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축구국가 대표팀의 스웨덴과의 평가전. 동아일보 자료 사진
운동 경기도 선수들끼리 말이 잘 통해야 이길 수 있다. 선수들 사이에 말이 안 통하면 그 게임은 십중팔구 지게 돼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의 흐름이다.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야 당연히 게임이 잘 풀린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의 외국인 감독 제이 험프리스(43)가 최근 답답함을 토로했다. 험프리스 감독은 미국프로농구(NBA) 피닉스 선스, 밀워키 벅스, 유타 재즈를 거친 빅 리그 출신.

“농구에서 포인트 가드는 ‘코트의 지휘자(director of the floor)’다. 그러나 한국 문화 특성상 포인트 가드가 신인일 경우 10년차 되는 고참 선수에게 자리를 지정해 주며 ‘어디로 움직여라’ 하고 지시하기가 어렵다. 물론 고참 선수들도 그런 상황을 안 좋아한다.”

올해 새로 입단해 펄펄 날고 있는 포인트 가드 정재호(23·178cm)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전자랜드의 최고참은 람보 슈터 문경은(34). 정재호와 11살 차다. 정재호가 아무리 코트의 사령관 역할을 맡고 있지만 대선배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기엔 한국 정서상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한마디로 ‘코트에서 신인과 고참 선수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 A매치 한국-스웨덴 경기가 끝난 뒤 한국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은 두 번 다 골을 먼저 넣고도 곧바로 스웨덴에 골을 내줘 2-2로 비겼다.

“한국 수비진이 무너진 것은 수비진 간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볼에 대한 집중력이 아쉬웠다.”

한국 수비진은 수비형 미드필더 이호(21)와 김동진(23)-김영철(29)-최진철(34)로 이어지는 스리백.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 수비진이 서로 소리를 질러 가며 협력 수비를 했다면 스웨덴의 역습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판단이다. 그냥 서로 미루고 있다가 스웨덴에 공간을 쉽게 내줬다는 것.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02한일월드컵 때 아예 그라운드에선 선수 사이에 ‘형’이나 ‘선배’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대신 나이가 적든 많든 똑같이 이름을 직접 부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과연 그게 말대로 쉽게 될까? 이천수(24)가 12살이나 위인 홍명보(36)에게 “명보야”라고 부를 수 있을까.

최근 타계한 ‘현대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요구’다. 수신자가 뭘 하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만일 커뮤니케이션이 수신자의 뜻(야망 가치관)에 부합된다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수신자의 뜻에 어긋난다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저항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수신자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말하기보다 듣기가 훨씬 중요하다. 인간은 보통 1분에 약 150개의 낱말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분에 600개 정도의 단어를 들을 수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 준다는 것은 일단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구기 종목에서 공은 언어다. 선수들은 그 공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믿음이 가지 않는 선수에게는 패스가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금방 패스미스를 했을지라도 신뢰가 두터운 선수에게는 다시 패스가 들어간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정보’와는 전혀 다르다. 정보는 ‘논리’다. 정보는 인간적 요소가 없을수록 그 가치와 신뢰감이 높아진다.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은 스킨십이 많고 신뢰감이 쌓일수록 잘 된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까이꺼’ 나이가 무슨 대수인가. 사실 NBA팀이라고 모두 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선후배 간의 끈끈한 한국 정서가 팀워크를 더 단단하게 할지도 모른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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