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인생의 복식조’ 된 셔틀콕 단짝

  • 입력 2005년 12월 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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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크리스마스에 백년가약을 맺는 한국배드민턴 환상의 복식조 김동문(오른쪽)-나경민 커플. 동아일보 자료 사진
25일 크리스마스에 백년가약을 맺는 한국배드민턴 환상의 복식조 김동문(오른쪽)-나경민 커플.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렇다. 배드민턴 쳐 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에 꼴깍…, 그만 침이 넘어간다. 밥 먹는 것도 잊는다. 무아지경. 셔틀콕은 새다. 날개가 있다. 새는 바람을 따라 난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 잠시 내려앉을지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쏜살같이 바람을 가르고, 때로는 눈송이처럼 하늘하늘 춤을 춘다. 라켓(100g)은 그물이다. 그물은 수도 없이 새를 덮친다. 그러나 웬걸. 새는 빙그르르 잘도 빠져 나간다. 빠르다. ‘눈 깜짝할 새’(1초)에 92.1m를 날아간다. 순간 최고속도는 시속 332km. 2005년 5월 제9회 세계혼합단체 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중국 푸하이펑이 강스매싱을 날린 속도다.

라켓은 검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아무리 빠른 검이라도 ‘눈 깜짝할 새’(셔틀콕)는 잡을 수 없다. 배드민턴 코트는 13.4m×6.1m(복식). 가장 빠른 스매싱 공은 0.1초에 9.21m를 날아간다. 이론상으로 셔틀콕이 코트 끝에서 끝으로 날아가는 데 약 0.145초 걸리는 셈이다.

하지만 코트 끝에서 끝으로 날리는 스매싱은 거의 없다. 대부분 코트 중후반에서 상대 코트 중간 앞쪽으로 날린다. 길어 봐야 9.21m를 넘지 않는다. 0.1초 안에 받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은 보통 어떤 움직임에 반응해 행동으로 옮기려면 적어도 0.5초 이상은 걸린다. 결국 반사신경으로 쳐야 한다. 냄새로 새의 발자취를 쫓아야 한다.

셔틀콕은 생물이다. 머리는 코르크지만 몸통은 16개의 거위 깃털이다. 섬광처럼 날다가도 문득 홀연히 속도를 지운다. 속도는 날개 속에 숨어 있다. 때론 총알처럼 직선으로, 때론 피그르르 맥없이 네트 앞에 떨어진다. 눈 밝은 검객은 결코 셔틀콕과 속도를 다투지 않는다. 새가 다니는 길목을 지킬 뿐이다. 그 길목은 네트다. 네트를 점령하면 아무리 빠른 새라도 단칼에 날아간다. 취모검(吹毛劍)이다. 누가 먼저 네트를 점령하는가. 새인가, 아니면 검객인가. 하아, 인간과 새가 저 네트 앞에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탐하고 있구나. 꼴깍 또 침이 넘어간다.

배드민턴의 꽃은 누가 뭐래도 복식경기다. 남자복식, 여자복식, 혼합복식 3개 종목이 있다. 복식은 자리싸움이고 머리싸움이다. 보통 상대 선수들 중간 틈새를 공격한다. 어중간한 곳에 오는 공은 아무래도 서로 미루기 쉽기 때문이다. 또 상대 두 선수 중 실력이 처지는 선수를 집요하게 공격한다. 혼합복식에서는 여자선수를 비정할 정도로 몰아붙인다. 여자선수는 될수록 앞쪽에 붙어 네트 플레이를 해야 한다. 뒤로 처지면 상대 남자 선수의 강스매싱이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온다. 남자선수의 강력한 스매싱과 빠른 순발력에 여자선수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결국 혼합복식의 승패는 ‘어떻게 하면 여자선수를 후위로 밀어내는가’ 혹은 ‘어떻게 하면 여자선수를 고립시키는가’ 하는 ‘자리 싸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세계 혼합복식 최강은 한국의 김동문(30) 나경민(29) 조다. 이들은 1996년 이후 10년간 세계 배드민턴 혼합복식의 ‘지존’으로 군림해 왔다. 2004년엔 세계 14개 대회 연속 우승과 국제대회 70연승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그뿐. 이들은 올림픽 혼합복식에선 하나의 메달도 따내지 못했다. 운도 지지리 없었지만 작전이 너무 노출된 탓도 컸다.

이들이 25일 크리스마스에 백년가약을 맺는다. ‘코트의 단짝’에서 영원한 ‘인생 혼합복식조’가 되는 것이다. 부디 인생무대에선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면 좋겠다. 배드민턴은 짧지만 인생은 길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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