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노장 김승기의 ‘2005 겨울’

  • 입력 2005년 12월 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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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하지만 프로농구에서 이 말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신인 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더라도 말년에는 쓸쓸하게 코트를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무리한 출전 욕심을 앞세우거나 자신의 거취를 놓고 갈등을 빚기 마련이다.

동부의 가드 김승기(33).

이제 달랑 한 장밖에 남지 않은 달력을 쳐다보는 그의 마음은 남다르다.

그는 ‘터보 가드’로 이름을 날리며 한때 강동희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1997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선 한국이 28년 만에 정상에 오르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올 시즌 그는 어이없이 농구 인생을 마감할 뻔했다. 모비스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려 전자랜드의 영입 제의를 받았으나 계약 마감 시한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없던 일로 하자”는 통보를 받았다. 졸지에 ‘코트의 미아’가 돼 아내와 두 아들을 둔 실직 가장이 될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이런 사정을 전해 들은 동부 전창진 감독이 그를 불러들였다. 극적으로 둥지를 찾은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남몰래 눈물을 쏟기까지 했다.

사실 전 감독과 김승기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3년 중앙대 졸업반이던 김승기는 현대 기아 등 쟁쟁한 실업팀의 스카우트 공세에도 삼성을 택했다. 당시 삼성 주무였던 전 감독의 인간적인 모습에 반했던 것. 그 후 김승기는 삼성을 거쳐 1998년부턴 TG(현 동부)에서 계속 전 감독과 한 배를 타다 2003년 모비스로 트레이드되면서 헤어졌다. 당시 TG가 우승을 한 뒤 연봉 문제로 김승기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전 감독과 농구를 하게 된 김승기는 이번 시즌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듯하다. 팀 내 최고참인데도 주장은 후배 양경민에게 물려주고 KTF로 떠난 신기성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구단 매각이 뒤늦게 결정되면서 흔들렸던 후배들을 다독거리는 맏형 노릇도 그의 몫.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았는데 이젠 몸이 점점 좋아져요. 팀이 어려운 만큼 작은 보탬이라도 되려고 합니다.”

‘코트의 황혼기’에 새로운 청춘을 맞은 김승기. 그의 아름다운 결말을 기대해 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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