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생각의 속도’가 승부 가른다

6월 15일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 슈퍼그랑프리 대회 100m 경기에서 9초 77로 세계신기록을 세운 아사파 파월. 동아일보 자료 사진

농구에서 가로채기는 2점을 거저 얻는 거나 같다. 외곽에서 공을 돌리는 상대 패스를 낚아채면 곧바로 무인지경이기 때문이다. 설령 골밑 부근에서 가로채기가 이뤄지더라도 즉시 속공으로 연결해 손쉽게 득점할 수 있다.

한국 프로농구에서 5일 현재 가로채기 1위는 울산 모비스의 용병 크리스 윌리엄스. 그는 한 게임 평균 3.25개의 가로채기를 기록해 거의 6점 가까이 딴다고 볼 수 있다. 2위는 오리온스 포인트 가드 김승현의 2.33개.

인간의 신경체계는 빛보다 빠르다. 빌 게이츠는 이를 ‘생각의 속도’라고 규정한다. 인간의 ‘생각의 속도’만큼 기업의 ‘정보처리 속도’가 빨라야 된다는 뜻이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현대 스포츠는 ‘속도 전쟁’이다. 빠르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써먹을 시간이 없다. 그만큼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한다. 공이 어디로 갈 것인지 예상하고 있으면 상대보다 훨씬 빠르게 그 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세계에서 100m를 가장 빠르게 달리는 사나이는 자메이카의 아사파 파월(22). 그는 100m를 9초 77에 달린다. 1초에 평균 10.235m를 달리는 셈이다. 파월은 6월 15일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FFA) 슈퍼그랑프리대회에서 9초 77로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그의 출발 반응시간(신호를 듣고 뛰쳐 나갈 때까지 걸린 시간)은 0.150초. 인간은 의학적으로 아무리 빨라도 출발반응 시간이 0.1초 이하는 불가능하다. 0.1초 이하면 즉시 파울 처리된다.

다른 종목 선수들의 출발 반응속도는 0.2∼0.4초 정도. 축구 골키퍼는 보통 0.25∼0.35초 선이다. 여기에 행동으로 옮기는 시간까지 합하면 0.5∼0.6초쯤 걸린다. 만약 페널티킥한 공이 시속 120km라면 11m를 통과하는 시간은 0.33초 정도 걸린다. 결국 골키퍼가 페널티 킥 공을 막기란 적어도 계산상으로는 불가능하다.

보통 축구 선수들의 100m 달리기는 12초대. 만일 골잡이가 ‘공의 갈 길’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상대 수비수보다 0.25∼0.35초 빨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0.25∼0.35초는 100m를 12초로 달리는 축구선수가 상대보다 약 2.08∼2.92m를 앞서 달릴 수 있다는 뜻. 골대 앞 20m 지점이라면 50∼63cm 정도 앞서 갈수 있는 셈이다. 농구 3점슛 라인(6.25m)에서 가로채기를 해도 비슷하다. 상대 골대까지의 남은 거리는 21.75m. 상대 수비와 똑같이 달린다 해도 최소 60cm는 앞서갈 수 있다.

축구 페널티 에리어 안에서의 50∼63cm 차이는 곧바로 ‘노마크 찬스’로 연결된다. 농구코트에서의 그 정도 거리면 단독 찬스다. 더구나 무게중심을 앞쪽으로 향하고 있는 공격수와 자기 골대를 등지고 있다가(무게중심이 발뒤꿈치에 있는) 몸을 돌려 공격수를 막아야 하는 수비수의 순간스타트 스피드는 그 차이가 더 날 수밖에 없다. 똑같이 출발하더라도 수비수가 불리한데 ‘생각의 속도’마저 느리다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일류 선수들은 공을 죽이지 않는다. 공은 ‘죽은 돌멩이’가 아니고 생물이다. 잘하는 선수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공이 펄펄 살아 구르도록’ 놔둔다.

한국 구기운동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정적’이다. 가만히 서서 받은 뒤 또 가만히 서 있는 동료에게 패스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생각의 속도가 느리다. 또한 대부분 공을 일단 죽인다. 그리고 나서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 패스한다. 공을 죽여 놓고 풀어 가느냐 아니면 살려 놓고 플레이 하느냐는 속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공을 생물처럼 다루려면 그만큼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된다. 몸은 어디까지나 생각의 노예일 뿐이다. 수레는 말이 끄는 게 아니라 마부가 끈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