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인 25일 광주 에벌루션 웨딩홀. 새신랑 서재응(28·뉴욕 메츠)의 우렁찬 목소리가 식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곧이어 들려온 신부 이주현 씨의 가냘픈 목소리. “나는 봉이다.”
어느 신랑에게 신부가 ‘봉’이 아닐까마는 이 씨가 없었더라면 메이저리거 서재응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동갑내기인 서재응과 이 씨가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5월. 대학 2학년 때였으니 결혼까지 8년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다. 함께 고생했던 지난날 생각에 이 씨는 결혼식 도중 울음을 터뜨렸다. 씩씩한 서재응 역시 양가 부모에게 큰절을 올리다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둘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서재응의 부상이었다. 1999년 서재응은 오른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당시 이 씨는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서재응은 외롭고 힘든 재활 기간을 머나먼 뉴욕에서 홀로 견뎌 내야 했다. 선수 생명의 위기에서 서재응을 지탱해 준 것은 이 씨의 사랑이었다.
원래 힘든 내색을 잘 하지 않는 서재응이지만 이 씨에게만은 예외였다. 2001년 봄 수술 후 첫 등판에서 경기를 망친 뒤엔 이 씨에게 전화를 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놨다. 그날 이 씨는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 씨는 2002년 8월 뉴욕으로 유학 가서 본격적인 내조를 시작했다. 이듬해 서재응은 거짓말처럼 구위를 회복하더니 메츠의 선발 한 자리를 꿰찼다. 9승 12패, 평균자책 3.82의 호성적.
작년의 부진을 딛고 서재응은 올해 다시 8승 2패, 평균자책 2.59의 성적을 올리며 이 씨에게 최고의 결혼 선물을 했다.
손민한(롯데), 이병규(LG), 홍성흔(두산)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야구 선수에게 결혼은 새로운 인생의 전기가 되곤 한다. 딸 혜린의 아버지가 먼저 됐고 이젠 유부남이 된 서재응의 내년 시즌 힘찬 도약이 더욱 기대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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