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진 지 20년 가까이 된 체육관들은 낙후된 시설을 한탄하며 새해에는 뭔가 달라질 것이란 기대를 품었죠.
그런데 당시 모임에 빠진 한국 체육관의 원조가 있습니다.
현재 여자프로농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서울 장충체육관으로 1963년 2월 1일 개관식을 했습니다. 당시 장충체육관 개관은 대단한 뉴스였습니다. 야간이나 겨울에는 정상적인 옥외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한국 최초의 실내경기장 탄생이 오죽 반가운 소식이었겠습니까.
먼지를 털어 가며 본보를 찾아 보니 사설에도 등장했더군요. 체육관 개관 당일 2면에 ‘장충체육관 개관을 축하한다’는 제하로 ‘우리나라 최대 실내경기장인데 농구 권투 탁구 배구 등이 주야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열리게 됐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사설은 또 ‘개관을 계기로 후진성에서 벗어나 스포츠 한국의 이름을 널리 떨치자’는 희망을 피력했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한국 스포츠는 사설의 바람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세계 정상권에 이르렀죠.
그러나 ‘스포츠의 산실’이라는 장충체육관이 새해 들어 심기가 불편한 듯합니다. 1일 새 주인을 맞았는데 스포츠와는 무관한 화장품 업체인 데다 이런저런 행사에 휘말리지 않을까 염려해서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가 1999년부터 체육관을 민간에 위탁 관리하게 하면서 3년마다 주인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액을 투자한 민간업자들은 체육 행사 대신 돈벌이가 되는 이벤트 대관에 치중한 겁니다. 재고의류 ‘땡처리’ 행사나 콘서트가 줄을 이으면서 2001년 220일에 이르던 연간 체육 경기 사용 일수가 해마다 줄어들어 2004년에는 73일에 불과했습니다.
앞으로 3년간 체육관 운영권을 차지한 업체는 무려 연간 13억 원을 들여 한국여자농구연맹과 배드민턴협회를 따돌렸습니다. 이 업체는 돈보다도 문화사업 차원에서 투자한 것이라고 합니다만 체육인들은 자칫 ‘텃밭’을 잃는 게 아닌가 걱정합니다. 여자프로농구는 경기 장소 물색에 애먹고 있으며 아마추어농구와 다른 스포츠 종목들도 체육관 사용이 어려워질까봐 지방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장충체육관은 언제쯤 본 모습을 찾을까요.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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