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유로 2004’ 그리스 우승의 비결

  • 입력 2006년 2월 10일 03시 23분


그리스 '유로 2004' 게임별 기록
-경기상대승패볼점유율(%)슈팅수패스성공률(%)파울경고코너킥
포르투갈2-1승37-638-1963-7623-202-23-10
스페인1-1무42-589-1169.6-77.416-205-22-15
러시아1-2패47-5312-1869.9-71.716-182-68-5
프랑스1-0승45-555-1164.8-78.414-232-23-3
체코1-0승48-529-1669.6-73.215-243-34-8
포르투갈1-0승42-584-1764.1-79.419-184-21-10
※앞의 숫자가 그리스 기록

그리스 축구는 유럽 축구의 변방이다. 그런데도 유로 2004에서 우승했다. 더구나 개최국 포르투갈을 비롯해 프랑스, 체코, 스페인 등 강호들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경기 내용을 보면 결승전까지 치른 6경기에서 그리스는 단 한번도 ‘게임을 지배’하지 못했다. 볼 점유율, 패스 성공률, 총슈팅수 등 어디 하나 상대팀에 앞선 게 없었다(표 참조). 그런데도 그리스는 이겼다. 도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걸까.

그 열쇠는 자물쇠 수비에 있었다. 그리스는 예선 첫 경기인 포르투갈전에서 4-5-1의 잔뜩 움츠러든 수비 중심 포메이션을 하다가 틈이 생기면 전광석화처럼 4-2-3-1로 바꿔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스페인과의 예선 두 번째 경기, 프랑스와의 8강전에선 아예 포백 아래 최종 스위퍼 1명을 더 두는 5백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수비와 미드필더진 사이를 10m 이내로 촘촘하게 좁혔다. 지네딘 지단 등 개인기가 뛰어난 상대팀의 플레이 메이커가 놀 땅을 처음부터 없애 버린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상대팀 요주의 선수는 맨투맨으로 따라붙었다. 이로 인해 허리와 공격진 사이의 공간이 벌어졌지만 빠르고 정확한 롱패스 한 방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스는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체코와의 4강전에선 4-3-3 포메이션으로 미드필드 싸움에 승부수를 띄웠다. 맨투맨으로 상대 투톱을 묶은 것은 전과 같았으나 미드필더들의 움직임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공수전환 속도가 체코를 압도했다. 체코는 그리스의 압박에 당황한 데다 체코의 천재 미드필더 파벨 네드베드가 부상으로 교체되자 조직력이 무너졌다. 그리스는 어느 경기에서나 상대가 중앙선을 넘기 전에 이미 8명이 두 줄 형태로 수비망을 구축해 놓고 맞받아칠 틈을 노렸다. 상대에 따라 수비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꿨다.

그렇다. 결국 수비가 핵심이다. 수비가 튼튼해야 공격도 할 수 있다. 물론 역습도 중요하다. 그리스 역습의 시발점은 중원지휘자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였다. 그는 프랑스전에서 면도날 같은 크로스로 앙겔로스 카리스테아스의 결승 헤딩골을 배달했다. 그는 결승전까지 무려 47개의 태클(1위)을 성공시키며 세계적 골잡이들의 창날을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그리스 덴마크 스웨덴은 우리가 독일 월드컵에서 맞붙을 스위스와 비슷하다.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틈이 보이면 한 방의 긴 패스로 골을 노린다. 그들은 체격도 크고 파워도 월등하다. 한국은 이번 해외전지훈련에서 그리스와 비기고 덴마크에는 1-3으로 패했다. 아직 수비 라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리스 핀란드 크로아티아 덴마크 미국전 등 5게임 연속 포백 수비를 실험했다. 월드컵 상대인 프랑스나 스위스가 스리톱을 즐겨 쓰기 때문일 것이다.

포백은 지역방어 개념이기 때문에 체력 부담이 적다. 또한 상대가 어떠한 공격 형태를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쓸 게 없다. 순간적으로 전술을 바꾸기도 수월하다. 포메이션은 생물과 같다. 경기 중엔 수시로 스리백과 포백 그리고 지역방어와 맨투맨 방어가 혼합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수비수 간의 호흡이다. 호흡이 안 맞으면 스리백이든 포백이든 구멍이 뚫린다.

핌 베르베크 한국대표팀 수석코치는 말한다. “대표팀 수비수들은 상대의 전술 변화에 따라 스리백으로 맞설 것인지 포백으로 맞설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자유자재로 내릴 정도가 돼야 한다”고. 그리스를 보면 한국이 월드컵에서 프랑스, 스위스와 어떻게 맞서야 할지 알 수 있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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