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맞고 들어오면 혼을 냈다. 반대로 때렸을 때는 용돈을 줬다. 아들이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싶어서였다.
KT&G 김동광 감독.
그는 1951년 부산에서 미국인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1996년 작고)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 공군 정보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일본으로 전출을 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동광(東光)이란 이름은 한 세무서 직원이 당시 부산에 흔했던 상호를 따 지어줬고 호적 신고도 실제보다 2년 늦었다.
김 감독은 6세 때 어머니와 인천으로 올라와 단칸방에 살며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미군 부대에서 청소 빨래 등 온갖 허드렛일을 했고 미제 물건을 팔면서 겨우 생계를 이었다.
송도중에 입학한 그는 혼혈이라 운동을 잘할 것 같다는 이유로 농구와 인연을 맺고 송도고, 고려대를 거치며 스타로 떠올랐다. 대학 졸업 후 산업은행 농구팀에 입단하려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뒤 어렵게 기업은행에 들어갔고 국가대표로 활약하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명성을 이었다.
믿을 건 오직 실력밖에 없다는 생각에 독하게 훈련했다. 밤에도 깜깜한 흙바닥에서 먼지를 마셔 가며 공을 튀겼고 숙소에서 체육관까지 10km 가까운 거리를 늘 뛰어다녔다.
그래도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말한다. 어머니와 주위의 도움이 컸다는 것. 중학교부터 실업팀까지 늘 함께 운동한 백인 혼혈인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 서로 의지할 수 있었다. 중고 시절에는 친아버지처럼 자상했던 전규삼 (2003년 작고) 씨의 지도를 받았다.
김 감독은 최근 ‘하인스 워드 신드롬’을 보며 마음 한편이 무겁다. 소외받는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 자칫 반짝했다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것. 차별을 받는 혼혈인도 그저 혼자 열심히 하면 잘될 수 있다는 그릇된 환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제2, 제3의 김동광’이 쏟아지는 사회는 그만이 바라는 희망은 아닐 것 같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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