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韓日… 내일 물러설수 없는 한판 승부

  • 입력 2006년 3월 18일 03시 05분


《둘은 선수 시절 비교도 안 됐다. 지도자로서 첫 걸음도 그랬다. 그러나 야구를 어디 이름으로 하나. 세월의 흐름은 어느새 둘을 한일(韓日) 양국의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들은 세계 야구 최강전인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에서 나라의 명예와 서로의 자존심을 건 숙명의 맞대결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19일 낮 12시(한국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리는 준결승이 그 무대다. 한국 야구대표팀 김인식(金寅植·59) 감독과 일본 오 사다하루(王貞治·66) 감독.》

○ 이웃집 아저씨 vs 왕의 남자

“잘하면 한 대 치겠더라고.”

탤런트 주현 씨가 모 제품 광고에서 주방장 옷을 입고 도마에 칼질을 하면서 내뱉는 억양이 바로 김 감독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김 감독은 호남 사투리를 가장 잘 구사하는 서울 사람, 그러면서도 말투가 가장 어눌한 서울 사람으로 손꼽힌다. 짧은 말 한 마디에도 마침표를 찍는 법이 별로 없다.

바로 이게 김 감독의 최대 장점이다. 화제의 중심에 있지만 대화의 키는 상대에게 슬쩍 돌려 버린다. 그리고 상대가 스스로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린다. 이런 그에게선 이웃집 아저씨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반면 귀공자풍인 오 감독의 눈은 매섭다. 이런 일화도 있다. 오 감독이 요미우리에 갓 입단했을 때다. 그의 외다리 타법을 지도했던 스승 아라카와 히로시 코치는 다른 팀 투수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오의 눈빛은 너무 무서워요. 그 눈매를 마주하면 우리는 움츠러들고 말죠.”

이튿날 아라카와 코치는 당장 오 감독을 불러 타일렀다. “너는 아직 멀었다. 승부사는 눈빛이 한없이 부드러워야 한다. 매서운 눈초리에 상대 투수는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투수를 안심시켜야 홈런을 칠 수 있다”고.

○ 큰 야구 vs 작은 야구

둘의 야구 철학은 더욱 대조적이다. WBC의 화두로 떠오른 한국의 ‘큰 야구’와 일본의 ‘작은 야구’는 두 감독의 스타일 차이에서 비롯됐다.

김 감독은 선수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경험과 관록을 더 높이 산다.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는 뜰 때까지 한없이 밀어주는 ‘기다림의 미학’도 눈길을 끈다. 말을 강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격언은 그가 가장 즐기는 말이다.

이번 대회에서 최희섭(LA 다저스)의 방망이가 내내 부진했지만 끝까지 클린업 트리오에 기용했고 전병두(기아) 같은 신예를 대표팀에 깜짝 발탁한 게 대표적인 예. 결국 최희섭은 14일 미국전에서 쐐기 3점 홈런을 쳐냈고 전병두는 몇 차례의 효과적인 중간계투로 한국의 철옹성 마운드를 거들었다.

그렇다고 김 감독의 야구가 ‘한 건 주의’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투수 출신인 김 감독은 두산 감독 시절 포수란 포수는 다 끌어 모았을 정도로 포수 욕심이 많았다. 이는 두산이 전력의 절대 약세에도 1995년과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게 했던 김인식표 마운드 운용의 묘와 직결됐다.

반면 오 감독은 명성보다는 실력 지상주의를 지향한다. 기동력과 번트, 밀어치기를 애용한다. 데이터를 중시해 제 아무리 에이스 투수나 홈런 타자라도 과감히 교체한다. 이러다 보니 선수들은 하나의 인격체라기보다는 기계의 부품에 가깝다는 혹평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일본의 ‘작은 야구’는 미국과 멕시코를 쩔쩔매게 하는 등 메이저리그 팬과 관계자들에겐 한국과는 또 다른 팀 컬러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 대기만성 vs 슈퍼스타

김 감독의 프로필을 보면 선수 생활은 짧은 반면 지도자 경력은 아주 길다. 서울 배문고를 졸업하고 당시 실업 최강 한일은행에 들어갔지만 잦은 부상으로 7년 만인 1972년 25세의 한창 나이에 유니폼을 벗었다.

하지만 오랜 지도자 경력에도 1982년 국내에 프로야구가 창설됐을 때 프로에 합류하지는 못했다. 1986년이 돼서야 현 삼성 사장인 김응룡 해태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반면 오 감독은 대만계지만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의 야구 영웅. 와세다 실업고 시절 고교 최고의 무대인 고시엔대회 우승 투수가 됐고 19세 때인 1959년 일본 최고 명문 요미우리에 입단하자마자 팀에 9년 연속 우승컵을 안겼다. 입단 3년째 되던 해 첫 홈런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경이적인 11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다. 2003년 삼성 이승엽(현 요미우리)에 의해 깨지긴 했지만 1964년에는 55홈런을 날려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통산 868홈런의 세계 기록(비공인)도 그의 것. 이 밖에도 최우수선수 9회, 홈런왕 15회, 타점왕 13회에 7경기 연속 홈런 등 이루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도자 생활도 대비가 된다. 김 감독은 1990년에야 만년 하위팀 쌍방울의 초대 감독으로 프로 사령탑에 데뷔했다. 반면 오 감독은 1984년 은퇴와 동시에 요미우리의 사령탑에 취임했다.

이제 두 사령탑은 결승 진출을 놓고 세 번째 맞대결을 벌인다. 일본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의 ‘30년 발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승장은 역사에 남을 것이고, 패장은 쓸쓸히 귀국행 보따리를 싸야 한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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