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스위스 대신 네덜란드 체코 혹은 스웨덴과 한조가 될 수도 있었으며 토고가 아니라 코트디부아르 혹은 가나와 같은 조에 편성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토고 스위스와의 동행이 ‘가능했던 다른 편성들’에 비해 나쁘지 않아 보임은 틀림이 없다.
‘복병’으로 꼽혀 온 토고가 이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드러낸 실력(?)과 끊이지 않는 자중지란의 모습도 우리의 기대감을 높이는 데 한몫한다.
토고의 최대 약점은 ‘수비’다. 기대주 에마뉘엘 마티아스는 덜 무르익어 보였으며, 중심 선수들인 장폴 아발로, 장장 아테우데이, 루도빅 아세모아사 등의 수비는 ‘재앙’에 가까웠다. ‘이중국적’을 지닌 선수들로 하여금 토고를 선택하게 하는 설득 작업도 여의치 않다.
스티븐 케시의 지휘봉을 넘겨받은 오토 피스터 감독에겐 한마디로 ‘할 일이 태산’인 셈이다. 현재의 토고는 에마뉘엘 아데바요르 단 한 선수를 제외하곤 2002년의 세네갈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카메룬 나이지리아와 마찬가지로 세네갈이 이번 예선에서 토고에 밀린 것은 유럽리그 스타들의 ‘정신적 해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토고와의 일전은 결코 편안한 승부가 아닐 것인데, 이 대목에서 유의미한 측면이 월드컵에서 종종 표출되어 온 아프리카 팀들 특유의 성향이다. 전력의 강약과는 별개로, 아프리카 선수들은 대회 초반에 더욱 초인적인(?) 면모를 보이는 반면 시일이 경과할수록 경기력이 하강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1982년 알제리는 루메니게, 브라이트너, 흐루베시, 리트바르스키가 포진했던 우승후보 서독(결국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을 상대로 첫 경기 승리를 낚았다. 90년 카메룬이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역시 대회 준우승에 도달한)를 침몰시켰던 유명한 경기 또한 개막전이었다. 2002년 개막전을 세네갈에 패배한 프랑스엔 서독 아르헨티나와 같은 회복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초반에 강한’ 아프리카의 스타일은 토고 프랑스 스위스를 차례로 만나는 우리의 일정이 생각만큼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의 한 가지 이유를 제공한다. 여전한 강호 프랑스, ‘황금 세대’를 꿈꾸는 스위스와의 경합을 감안할 때, 첫 경기 토고를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 이기면서 출발해야 하는 우리로선 더욱 그렇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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