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김인식 감독 ‘믿음의 리더십’

  • 입력 2006년 3월 24일 03시 08분


736승 38무 772패.

김인식(사진) 감독의 통산 한국 프로야구 성적(국가대표 감독 제외)이다. 이긴 것보다 패배가 36번 더 많다. 그만큼 그는 가슴에 피멍이 들고, 새카맣게 가슴을 태운 날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언젠가 그는 “쌍방울 시절(1990∼92년), 숙소에 돌아와 ‘왜 졌는지’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날이 부옇게 밝아 오더라”며 “식은땀으로 흥건한 유니폼을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깨닫고 너무 외로웠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패배를 통해 승부를 즐길 줄 아는 ‘도사’가 됐다. 승패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승부의 세계를 보는 것이다.

“한 400∼500번쯤 졌더니 선수들 보는 눈이 좀 생기더라고. 그래서 전력이 약한 팀은 아무래도 경험 많은 감독이 좋을 것 같아….”

그는 ‘선수 탓’을 하지 않는다. 설령 선수가 번트를 대지 못해 지더라도 “다 내 탓이여∼” 한마디 하고 끝이다. 감독이 잘 못 가르쳐서 그랬으니 ‘감독 탓’이라는 논리다. 그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흠 없는 선수는 없다고 본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실수한 선수는 누구보다 스스로가 자책하고 있을 텐데, 감독이 왜 또 소금 뿌리냐며 입을 다문다.

그는 상처받은 영혼들을 큰형님처럼 감싸준다. 다른 팀에서 버림받은 선수들을 품에 안아 ‘기’를 다시 살려 놓는다. 조성민 김인철 지연규 등이 좋은 예다. 그래서 ‘재활공장장’이요, ‘재활의 신’이다.

그는 사람을 편하게 해 주고 남의 말을 들어 준다. 가식적이지 않고 사심이 없고 계산하지 않는다. 자신의 흠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작전에 실패했을 때는 “허 그것 참, 내가 잘못 판단했어”라고 인정한다. 그는 선수를 믿는다. 선수가 계속 실수를 해도 참고 기다린다. 속이 썩고 또 썩는다. 하지만 그 선수가 언젠가 제 몫을 해 줄 때 비로소 돌아서서 “그래, 내가 맞았어” 하며 소처럼 웃는다.

그는 작전을 잘 내지 않는다. 작전 없는 작전이야말로 최고의 작전이라고 생각한다. 볼카운트 노 스트라이크 스리 볼이나 원 스트라이크 스리 볼일 때도 타자에게 마음껏 치라고 한다. 그 상황에서 작전을 걸면 타자는 나쁜 볼에도 할 수 없이 방망이가 나가야 하는데 그건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은 편안하게 쳐야 잘 맞는다고 굳게 믿는다. 그는 1991년 8월 14일 쌍방울 시절 9번 연속 패전에 허덕이고 있던 고졸신인 김원형(현 SK) 투수를 광주 해태전에서 또 선발로 내보냈다. 상대는 당대 최고투수인 해태 선동렬. 감격한 김원형은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결과는 9이닝 2안타 10탈삼진으로 1-0 승리. 김 감독은 “그 생각만 하면 언제나 짜릿하다. 어떻게 하든 그 친구를 쌍방울 기둥투수로 만들고 싶었다. 김원형은 그 이후부터 펄펄 날았다”며 뿌듯해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성품이 따뜻하지만 무른 것은 아니다. 척하면 다 안다. 모든 걸 꿰뚫고 있으면서도 내색을 안 할 뿐이다. 참 대단하다. 그도 인간일진대 속이 얼마나 썩고 또 썩을까. 리더가 사람이 좋다는 소리를 들으면 조직이 잘 안 돌아가는 게 일반적인 얘기다. 그러나 김 감독은 그렇지 않다. 맡는 팀마다 잘 돌아간다.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척척 한다.

그는 “감독은 보이는 것 자체가 선수에게 스트레스”라며 훈련장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감독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던진다’는 자세로 달려든다. 그의 리더십 본질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 요체를 크게 3가지로 본다. 첫째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성품. 둘째는 자신의 마음속까지 뒤집어 보여 주는 솔직함. 셋째는 오버하지 않고 ‘상식선’을 지키려는 몸가짐.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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