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근육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단거리선수들은 근육이 울퉁불퉁하고 우람하다. 하지만 마라톤 선수들의 근육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빈약하다. 왜 그럴까. 보통 사람의 근육은 속근(速筋)과 지근(遲筋)으로 나뉜다. 속근은 순간적인 힘을 발휘하는 데 적합하고 지근은 지구력을 발휘할 때 적합하다. 속근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 발달한다. 역도선수나 단거리선수의 근육이 울퉁불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속근은 신경의 자극을 받으면 순식간에 수축한다. 하지만 지근은 수축 속도가 속근에 비해 훨씬 느리다. 그 대신 속근보다 에너지를 많이 저장하고 있다. 작고 섬세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겉보기에는 왜소하지만 속은 참나무처럼 꽉 차있는 것이다. 지근은 조깅 등 유산소 운동을 해야 발달한다.
짐승 중에서도 사자 호랑이 등 육식 동물은 속근이 발달해 덩치가 우람하지만 사슴이나 얼룩말 등 초식동물은 지근이 발달해 날씬하다. 사슴과 얼룩말은 사자에게 쫓길 때 약 500m만 도망가는 데 성공하면 살 수 있다. 지근이 발달하지 못한 사자는 먼 거리를 빠르게 뒤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라톤 감독들은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 사슴 같은 발목, 통자형의 넓은 가슴, 작은 머리를 가진 선수를 최고로 친다. 이런 선수들이 지근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황영조와 이봉주가 대표적인 예다. 물론 머리가 작으면 가벼워서 뛰는 데 부담이 덜 가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속근은 더위에 강하고 지근은 추위에 강하다. 당연히 단거리 선수들은 더운 날씨를 좋아하고 마라톤 선수들은 쌀쌀한 날씨를 좋아한다. 날씨가 쌀쌀하면 우람한 근육은 경련이 쉽게 일어난다. 반면 마라톤 선수들은 더위에 약하다. 마라톤의 최적 기온이 섭씨 9도 안팎(습도 30∼40%)인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약간 쌀쌀하고 건조한 날씨가 마라톤 하기엔 좋은 것이다.
섭씨 38도를 오르내렸던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육상 단거리 남자 100, 200m에서 도너번 베일리(9초 84)와 마이클 존슨(19초 32)이 세계신기록을 낸 것을 비롯해 역도에서 14개의 세계신기록이 쏟아진 것은 속근에 유리한 더운 날씨 때문이다.
속근이 발달하면 지근은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반대로 지근이 발달하면 속근이 약화된다. 그래서 육상에서는 속근과 지근이 고루 발달해야 하는 중거리(800m, 1500m 등)종목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한쪽 근육이 유난히 발달한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 중에서 뛰어난 단거리선수나 마라토너가 나온다.
현대 스포츠의 생명은 ‘스피드’다. 어느 종목이든 스피드가 없는 선수는 설 자리가 없다. 세계 무대에서도 스피드 있는 선수만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스피드가 없는 선수는 올림픽이나 세계 무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만큼 스피드는 기본이다.
김인식 한국야구대표팀 감독이 “스피드가 있는 꿈나무들을 선발해 집중적으로 가르치면 세계 무대에서도 한번 해볼 만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의미다. 만약 한국축구대표팀 선발 11명의 선수가 100m를 11초에 달릴 수 있는 빠른 선수로 구성된다면 아마 ‘공포의 팀’이 될 것이다.
스피드는 결코 훈련을 통해 나아지지 않는다. 대부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기술은 후천적으로 가르칠 수 있지만 스피드는 훈련으로 향상되는 데 한계가 있다. 빠른 선수는 태어날 때부터 보통 사람보다 유난히 속근이 발달해 있다. 스포츠 꿈나무를 조기에 발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한국 스포츠가 이 정도 할 수 있게 된 것도 ‘스피드’에 힘입은 바 크다. 핸드볼 축구 야구 배구 등 한국 구기종목 선수들은 정말 빠르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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