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인천국제공항 23번 게이트에서 입국 신고장으로 가는 길. 29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한국계 ‘흑진주’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는 수십 명의 취재기자들에 휩싸여 밀리는 바람에 어머니 김영희(55) 씨와 떨어지자 “어머니 좀 돌봐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역시 효자였다.
한국계로 NFL 최고 스타로 떠오른 워드가 3일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태어난 이듬해인 1977년 미국으로 떠난 지 꼭 29년 만의 고향 방문이다.
“너무 아름답다. 한국의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 내가 태어난 병원, 어머니와 내가 살던 곳…. 한국은 내 배경(background)이다. 한국의 음식과 문화, 여행, 쇼핑…. 모든 것을 경험하겠다.”
검은색 모자, 갈색 선글라스에 은색 귀고리를 한 워드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틈나는 대로 어머니를 껴안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기억조차 없는 고국이지만 주위를 돌아보며 “예쁘다. 아름답다”를 연발하며 29년 만의 귀환을 즐겼다.
워드의 한국 방문은 ‘어머니에 대한 약속(Promise to mother)’. 식당일 등 하루 세 가지 일을 하면서 평생 자신을 위해 살아 온 어머니와 함께 고향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사느라 바빠 이제야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워드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워드는 “박찬호 선수가 아름다운 나라 한국을 맘껏 즐기고 오라고 했다. 이번엔 어머니와 나만 왔지만 다음엔 가족이 모두 함께 올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친지 방문차 한국에 왔던 어머니 김 씨는 “아들과 함께 오니 이렇게 좋은 것을…”하며 말문을 흐렸다. 김 씨는 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아들과 함께 한국의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어 기쁘다. 짬뽕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인으로 살았지만 자신에게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을 단 한번도 잊어 본 적이 없다는 워드였다. 사실 어머니와 조용히 방문하고 싶었지만 올해 2월 NFL 최강자를 가리는 슈퍼볼에서 최고의 영예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돼 지구촌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바람에 모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워드는 한국에서 자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이용해 이번 방문에서 자신과 같은 혼혈인을 위한 행사에 참여하는 등 혼혈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워드는 “창피한 것은 혼혈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혼혈인에 대해 차별하는 것”이라며 “어린 혼혈아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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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 조리팀에 보디가드 23명 철통경호▼
3일 오후 6시 반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로비.
취재진과 호텔관계자 100여 명이 양쪽에 도열하고 통로에 VIP용 통로가 만들어졌다. 하인스 워드와 어머니 김영희 씨가 도착하자 롯데호텔 장경작 사장이 직접 영접하며 환영인사를 했다. 끝없는 카메라 플래시와 기자들의 몸싸움을 경호원들이 제지하며 워드는 순식간에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같은 시간 호텔 33층의 반쪽 통로 전체가 안전요원에 의해 통제됐다. 본보 취재진이 비상구 두 곳을 통해 진입을 시도했지만 거구의 경호요원에게 들리다시피 떠밀려 1층으로 끌려 내려왔다. 워드가 묵는 방은 3300호 로열 스위트 룸. 주 침실을 비롯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응접실 다이닝룸, 부속 침실 등으로 이뤄진 총 90평 규모다. 하루 방값만 605만 원으로 박찬호(샌디에이고)도 국내 체류시 이용하는 곳이다.
호텔은 워드 일행의 투숙에 앞서 샹들리에와 객실 전등을 교체하고 벽지를 새로 했으며 워드의 어머니가 불편 없이 욕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욕실 턱에 보조 대리석 계단까지 설치했다.
오후 8시쯤 워드의 이모와 이모의 딸로 추정되는 20대 여성과 손녀로 보이는 대여섯 살 어린이 등 3명이 호텔에 도착했고 오후 8시 반경 워드와 어머니, 이모 일행 등 5명이 지하 1층 한식당 ‘무궁화’로 내려왔다.
라이브로 가야금이 연주됐고 이병우 총주방장 등 5명의 워드 전담 조리팀이 준비한 특별 메뉴가 준비됐다. 새우냉채, 호박죽, 파전, 갈비, 냉면, 된장찌개, 밥 순.
워드는 엄청난 대식가였다. 이 총주방장은 “이날 워드 일행 5사람은 갈비를 모두 20인분이나 먹었는데 워드 혼자 10인 분 이상을 해치웠다”고 전했다. 워드가 한국 갈비를 먹고 싶다고 해 호텔 측이 따로 준비한 횡성 한우로 만든 특제갈비였다. 워드도 조리장에게 “무척 맛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한편 사설경호업체 근접경호요원 8명과 일반경호원 15명이 국빈급 경호를 펼쳤다. 호텔은 추가로 15명의 안전요원을 배치했다.
앞서 대한항공은 워드와 김 씨의 첫 한국 방문에 1등석을 제공했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서울까지 왕복 항공료 1인당 909만 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워드는 기아자동차의 의전용 최고급 오피러스를 타고 숙소인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로 이동했다. 기아자동차 국내마케팅팀 정진욱 대리는 “워드가 한국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한국음악과 비디오 등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워드가 입을 옷은 제일모직이 맡았다. 워드의 옷을 맞추기 위해 제일모직의 모델리스트(패턴 디자이너)가 지난달 25일 애틀랜타 자택까지 직접 가서 치수를 재고 원단과 디자인을 선택했다. 워드가 청와대 방문 등 행사에 입고 갈 파티복은 갤럭시 최고급 라인인 ‘수미즈라’의 은은한 광택의 회색 정장. 캐주얼은 ‘후부’의 흰색줄무늬 검은색 야구잠바, 근육이 드러나는 민소매 티셔츠, 빈티지 스타일의 청바지가 낙점됐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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