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활약했던 황규봉(전 삼성), 윤석환(두산 코치), 김용수(전 LG) 등의 주무기도 모두 빠른 볼이었다.
불같은 강속구로 타자를 압도하는 모습. 마무리 투수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느린 볼을 가진 마무리 투수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올해만 해도 정재훈(두산), 구대성(한화), 정대현(SK) 등이 팀의 마무리로 낙점을 받았다.
이들의 직구 최고 구속은 140km를 조금 웃도는 정도다. 정대현은 130km대가 최고 스피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수준급의 제구력과 빠른 직구를 대신하는 결정구를 갖고 있다.
올해 초 메이저리그에서 친정팀 한화로 복귀한 왼손 투수 구대성은 8, 9일 기아와의 2연전에서 연속 세이브를 따냈다. 등 뒤에서 공이 나오는 것 같은 특이한 투구 폼에 오른손 타자의 무릎 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는 여전히 훌륭했다.
9일 현대전에서 승리 투수가 된 정대현의 장점은 직구 같은 직구가 없다는 것. 거의 모든 공이 타자 바로 앞에서 심하게 움직인다. 싱커는 한국 최고 수준.
작년 세이브 왕 정재훈도 8일 LG전에서 첫 세이브를 따내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그는 포크볼을 높낮이에 상관없이 마음먹은 대로 던질 줄 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50km대의 빠른 공을 공략하는 타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도입한 한국 타자들의 힘과 방망이 스피드는 몇 년 사이에 몰라보게 좋아졌다. 160km를 던져도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타자들이 쳐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선수 시절 강속구를 던졌던 선동렬 감독이 “스피드보다는 제구와 볼 끝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헌재 기자 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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