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영웅, 편견을 깨다

  • 입력 2006년 4월 12일 03시 02분


한국계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스타 하인스 워드가 혼혈인을 위한 재단 설립 의사를 밝혔다.

워드는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출국 기자회견에서 “한국 혼혈 문제를 해결하는 데 대해 사명감을 느낀다”면서 “다음 달에 아내, 아들, 매니지먼트팀과 함께 돌아와 펄벅재단과 논의해 혼혈 아동을 도울 내 재단(헬핑 핸즈)을 설립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는 아직 혼혈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어두운 면이 남아 있다”면서 “한국이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드는 이어 “나를 열렬히 지지한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며 “그들은 나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 줬다.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워드는 12일 오전 10시 미국 애틀랜타로 떠난다.

워드의 방한은 국내에서 차별받는 혼혈인들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이들에 대한 지원 정책이 가시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보 1월 13일자 A1·3면 참조

전문가들은 워드의 방한이 혼혈인에 대한 일시적인 관심이 아닌 정책적 지원 확대와 다양성 중시 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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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관심인가, 혼혈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인가. 하인스 워드의 방한은 한국의 혼혈인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서울시 명예시민증을 받고 눈물을 지은 워드(왼쪽). 3일 어머니 김영희 씨와 함께 인천공항에 도착해(왼쪽에서 두 번째) 혼혈 어린이 희망 나누기 행사에 참가하고(왼쪽에서 세 번째)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는 11일 출국 기자회견을 했다(오른쪽). 홍진환 기자·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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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인 관심 불붙인 ‘워드 효과’=국내 혼혈인은 3만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특히 최근 국제결혼이 크게 늘면서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혼혈인에 대해 제대로 된 실태 조사조차 한 적이 없다.

워드의 방한은 한국 땅에서 태어났지만 주변인에 머물렀던 혼혈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됐다.

‘워드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난 곳은 정치권.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7일 ‘국제결혼 가정에 대한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합의했고 한나라당도 뒤질세라 김충환 의원이 8일 ‘혼혈인 및 혼혈인 가족 지원법’을 발표했다.

청와대 역시 이달 말까지 소수인종 차별 금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언론의 관심 밖에 있던 혼혈인들도 속속 언론에 등장해 자신들의 고통을 알렸다. 국제가족한국총연합 배기철(裴基喆) 회장은 “이렇게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여자프로농구 혼혈 선수 장예은(19·우리은행) 씨는 “워드가 온 뒤로는 거리에 나서도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이제 혼혈인도 능력에 따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짝 효과에 그칠까=혼혈인과 혼혈인 지원 단체들은 워드의 방한 효과가 혼혈인에 대한 ‘반짝 관심’으로 그칠까 봐 우려하고 있다.

특히 지나치게 개인의 성공담만을 부각하는 ‘영웅 만들기’와 일부 대기업과 언론을 중심으로 벌어진 ‘워드 모시기 경쟁’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 워드 측은 5일 예정에 없던 펄벅재단 방문 일정을 마련하면서 일부 언론에만 행사 내용을 공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워드의 국내 법률 대리인인 임상혁(任祥赫) 리인터내셔널 변호사는 “워드가 언론과 빡빡한 일정 때문에 힘들어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며칠 동안 쏟아 낸 각종 지원 법안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펄벅재단 이지영(李芝英·여) 사회복지사는 “혼혈인 특례입학법은 역차별의 소지가 있고 혼혈인을 ‘결혼 이민자 자녀’로 부르자는 주장은 혼혈인의 역사를 무시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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