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73) 통일문제연구소장.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바쳐 온 그는 축구와의 인연이 남다르다고 했다.
열세 살 때. 서울에만 오면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을 줄 알고 상경했지만 가진 건 몸뚱이가 전부인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유니폼 입은 선수들을 보고 따라갔다 몰매를 맞았고, 그 학교 교장을 찾아가 받아 달라 사정했지만 다시 끌려 나와 또 매를 맞았다. 그때 그는 결심했다. 재주와 뜻이 있어도 돈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잘못된 세상을 발로 차는 ‘진짜 축구’를 해 보겠다고.
6·25전쟁 때 피란길에는 빨갱이로 몰려 헌병대에 끌려갔지만 축구를 좋아했던 수사관을 만나 천신만고 끝에 풀려날 수 있었다는 백 소장. 그에게 태극전사들은 각별하다.
“한번은 이천수가 나를 찾아왔어. 그때 내가 덧이름(별명)을 ‘미꾸라지’라고 붙여 줬지. 어떤 수비도 뚫을 수 있는 진짜 미꾸라지 같은 선수가 되라고. 박지성은 한눈 안 팔고 축구만 하는 것 같아. 그래서 좋아.”
축구장 푸른 잔디만 보면 그 옛날 맺혔던 한이 다시 생각나 울고 싶다는 그에게 선수들한테 꼭 해 주고 싶은 말을 청했다. 백 소장의 목소리가 커진다.
“축구 선수는 둥근 공만 차는 게 아냐. 잘못된 둥근 땅별(지구)도 함께 차는 것이 진짜 축구야. 그런 깨달음을 갖고 뛰어야 해. 목표가 16강? 재수 없게 16강이 뭐야. 딱 한방, 딱 한방에 온∼몸을 실어. 그러면 으뜸갈 수도 있어. 그게 축구야.”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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