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네팔 카트만두의 한국 게스트하우스인 빌라 에베레스트. 박영석(43·골드윈코리아 이사·동국대산악부 OB) 대장은 중국 티베트 에베레스트(해발 8850m) 베이스캠프를 지키고 있다 낭떠러지 비포장 길을 이틀간 달려온 대원들을 다시 만나자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끌어안았다.
셰르파 한 명만 데리고 11일 티베트 루트를 통해 정상에 오른 뒤 네팔 쪽으로 하산해 12일 단일팀으로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횡단에 성공한 박 대장.
그는 대원들을 만나자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글썽이며 “야, 너무 좋다. 좋아”라고 마냥 즐거워했다.
“히말라야 8000m급 고산 등반만 이번이 33번째입니다. 그동안 한 번도 원정을 성공하게 해달라고 빌어 본 적이 없어요. 모두 무사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했죠. 성공은 덤입니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그럴까. 그는 이번 원정에서 정상에 설 때까지도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확신을 못했다고 했다. “날씨가 워낙 변덕이 심해 정상에 올라가서 기상 상태를 확인한 다음에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바람이 희한하게도 티베트에서 네팔 쪽으로 불더라고요. 바람이 저를 내려가라고 등을 밀어 주는 듯했어요.”
에베레스트는 네팔어로 사가르마타, 바람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박 대장은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봉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상에서 남봉(해발 8751m)과 힐러리 스텝(해발 8600m) 쪽으로 하산을 시도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한없이 시간을 허비한 것.
게다가 힐러리 스텝에서는 낡은 로프에 왼쪽 발목이 감겨 거꾸로 매달리기까지 했다. 1차 하산 목적지인 사우스콜(해발 7925m)로 내려오면서 크레바스(얼음 틈)에 두 번이나 빠져 셰르파 세랍 장부(37)가 낑낑거리며 끌어올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해발 7300m에서 스위스 팀이 세워 놓은 빈 텐트를 발견하고서야 그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었다. 현지 시간으로 11일 오전 3시 45분에 티베트 쪽 마지막 텐트를 출발한 지 무려 26시간 30분 만인 12일 오전 6시 15분의 일이었다.
“하산 길에서만 시체 5구를 봤어요. 등골이 오싹했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 그리고 나를 보고 희망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힘을 얻었지요.”
박 대장은 이번 원정에서 희귀병을 앓는 어린이 24명의 소망을 담은 깃발과 모교인 동국대 건학 100주년 기념 동판, 후원사인 LIG손해보험의 임직원과 고객들의 소원을 담은 깃발과 타임캡슐을 정상에 올려놨다.
그가 횡단에 성공하자 네팔 현지에서도 난리가 났다. 18일 환영대회에 네팔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이 참석해 산악연맹회장과 공동 명의의 횡단 축하 증서를 수여했다. 1988년 네팔-중국-일본 합동대가 해낸 횡단을 박 대장이 단일팀을 이끌고 해낸 것을 보고 놀라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25일 귀국하는 박 대장은 9월 악명 높은 안나푸르나(해발 8091m) 남벽을 도전하고 내년 봄엔 다시 에베레스트를 찾아 신루트를 개척해 ‘코리안 루트’를 만들 계획이다.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까지 겨울철 얼어붙은 베링 해협에도 재도전한다.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은데 나이를 먹는 게 억울해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많이 다녀야죠. 하하.”
카트만두=전 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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