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는 산문이다. 서사적이다. 잘 짜인 카펫 같다. 독일 전차처럼 완강하다. 베를린 장벽처럼 튼튼하다. 하지만 왠지 답답하다. 지루하다. 선수들 표정도 엄숙하다. 차라리 잉글랜드 축구가 시원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다. 자신도 모르게 TV에 코를 박게 만든다. 둥∼둥∼둥∼. 사나이의 피를 솟구치게 하는 북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브라질 선수들에게 축구는 하나의 놀이다. 그저 본능대로 재밌게 한판 놀면 된다. 쯧쯧, 도대체 뭐가 그리 복잡한가? 뭐가 그리 말이 많은가?
2006년 독일 월드컵 브라질대표팀 선수인 카카(AC 밀란)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축구란, 말하자면 골을 위한 댄스”라고 말한다. 브라질대표팀 주장이었던 둥가는 “일은 공이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선수들은 그냥 그라운드에서 한바탕 삼바를 추면서 신나게 놀고 있으면 공이 다 알아서 해준다는 것이다. 둥가가 누구인가. 그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 ‘짠물 수비’의 핵이었다. 그로 인해 현대 축구의 수비형 미드필더란 포지션이 비로소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몸싸움이 가장 심한 자리다. 그런데도 둥가는 ‘한판 신나게 놀았다니…’. 마침 둥가라는 애칭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중 한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악동 둥가, 개구쟁이 둥가, ㅋㅋ 하나도 밉지 않다.
천하의 브라질도 20여 년간 맥을 못 춘 적이 있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에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무너졌다(0-2 패). 그것은 축구 혁명이었다. 브라질의 화려한 개인기는 요한 크라위프가 이끄는 ‘전원 수비, 전원 공격’ 앞에서 무력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24년 만에 우승했지만 그것은 철저히 수비 위주의 축구를 펼친 덕이었다. 8, 9명이 언제나 수비 라인에서 북적거렸다. 이탈리아와의 결승전도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이긴 ‘껄쩍지근한’ 승리였다. 브라질 축구는 사라졌다. 우승은 했지만 브라질 팬들은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당시 파레이라(현 감독) 감독은 귀국 후 즉각 목이 날아갔다.
현대 축구는 갈수록 서로를 닮아 간다. 브라질은 유럽을 닮아 가고, 유럽은 브라질을 벤치마킹한다. 이른바 ‘축구의 세계화’다. 이제 ‘압박’과 ‘속도’는 어느 나라에나 기본이다. 토털 사커도 일반화됐다.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의 방법만 약간씩 다를 뿐이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처럼, 조금씩 그 나라의 축구 색깔이 보일 뿐이다. 이젠 펠레나 마라도나 같은 천재들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축구 천재라도 건장한 사나이 20명이 몰려 있는 20m 폭의 공간은 운신의 폭이 너무 좁다.
하지만 그 ‘약간의 차이’가 승부를 결정한다. 브라질은 역시 ‘개인기’이고 독일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조직력’이다. 잉글랜드는 바람 같은 속도다. 그들은 이 ‘바늘 끝 같은 매운맛’으로 상대를 이긴다.
한국 축구는 풋풋하다. 싱싱하다.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쏟아 낸다. 바로 그 열정으로 ‘붉은 꽃’을 다발로 피워 낸다. 우지끈 딱. 5000년 동안 뭉치고 다졌다가 한순간 터져 나오는 폭발력. 우리의 젊은 그대들 가슴은 이미 숯불처럼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다.
김화성 스포츠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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