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월드컵]태극전사 24시 따라가 보니…

  • 입력 2006년 6월 2일 03시 11분


“10시간 수면을 취하라.”

한국축구대표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선수들에게 잠꾸러기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컨디션 회복을 위해서 국내에서부터 강조해 온 내용이다. 그러나 해외훈련 초기에는 잠 못 드는 밤이 많다.

스코틀랜드로 훈련을 온 첫날은 비행기 연착으로 밤 1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대표팀 최주영 의무팀장은 선수들이 현지 시간으로 오후 11시 이전에는 잠자지 못하게 한다. 시차 적응 방법이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아 오전 3, 4시경에 깨는 경우도 많다. 최 팀장은 수면제가 아닌 시차 적응 약을 먹이기도 한다.

대표팀은 대개 오전 9시에 일어나 오후 11시 반이면 잠자리에 든다. 일정표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직접 짠다. 일정표상 취침시간은 9시간 반이지만 오후 2시부터 4시까지의 휴식시간 중 선수 대부분이 낮잠을 자는 것을 포함하면 하루 10시간 이상 자고 있다.

오전에는 호텔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러나 점심 및 저녁 식사 때는 경기 파주시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부터 따라온 정지춘 조리장이 솜씨를 발휘한다. 그는 국내에서 가져온 김, 북어 등의 반찬을 내놓는다. 정 조리장은 김남일과 안정환이 간장게장을 좋아한다는 것 등 선수들의 식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이번 전지훈련 기간 중에는 쌀에 국내 독지가가 보내온 산삼가루를 섞어 밥을 짓고 있다. 대표팀 미디어담당 오준석 대리는 “선수들이 점심 저녁 식사 때는 한식만 찾는다. 정 조리장이 대표팀 전력의 20%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조리장은 한식 요리를 위해 대형 전기밥솥 2개를 싸가지고 왔다.

선수 23명, 코칭스태프 5명, 의무 행정 지원팀 15명으로 구성된 선수단은 대형 버스를 타고 숙소와 훈련장을 오간다. 훈련은 대개 1시간∼1시간 30분가량이다.

훈련장에서는 응원 피켓을 든 교민들이 “와∼ 안정환이다. 박지성 봤다! 박지성을 봤다!”며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선수를 접촉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된다. 기자들도 아드보카트 감독이 그날 지명한 선수 외에는 인터뷰를 하지 못한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선수단과 언론과의 관계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는 해외 구단 감독 시절에도 여러 차례 언론과 격론을 벌였다.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숙소에서 TV를 보며 잡담하거나 물리치료를 받는다. 되도록이면 경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지난달 31일 대표팀은 전지훈련 장소인 스코틀랜드에서 노르웨이 오슬로로 이동했다. 전세기에 선수단과 50여 명의 기자들이 탔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기자들이 선수들의 휴식과 안정을 위해 말을 걸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비행기를 함께 타게 했다. 일부 기자가 홍명보 코치와 인사를 나누는 순간 뒤쪽에 있던 기자들이 “어이∼ 안돼! 안돼!”라며 제지했다. 이 기자들은 “인사도 못하냐?”며 홍 코치와의 대화를 중단했다.

스코틀랜드에서 노르웨이로 가는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정경호 조원희는 음악을 들었다. 김영광은 게임기를 가지고 놀았다. 설기현이 지원팀과 농담하고, 주장 이운재가 통역 박일기를 보고 “머리가 크다”며 농담을 한 것 외에는 대부분 말을 아꼈다. 그러나 안정환과 홍명보 코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눴다. 선수들은 그 사이에 전화기를 들고 긴 통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1시간 40분간의 비행시간 동안 선수단은 침묵했다. 떠들썩하거나 흥겨운 비행은 아니다. 선수단의 긴장감은 무거웠다. 오후 2시경 오슬로에 도착한 선수단은 곧바로 짐을 풀고 오후 7시부터 훈련했다. 비행기 안에서 무거웠던 침묵은 공 뺏기 게임을 하며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대표팀 주변에는 예민한 긴장과 활력이 함께 흘렀다.

오슬로=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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