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우승 후보 그룹에 포함시켜야만 하는 중요한 근거는 프랑스가 ‘혼자의 힘으로 승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서운 재능을 지닌 선수를 ‘둘’이나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둘’은 지네딘 지단(레알 마드리드)과 티에리 앙리(아스널).
실력과 가시적 업적들을 감안할 때 지단은 펠레와 마라도나, 베켄바우어와 크라위프의 후예로서 손색이 없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 조지 베스트처럼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한 불우한 천재들을 모두 아우른다 하더라도 지단이 위대한 선수들의 역대 명단에서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리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앙리는 현재 최고조에 올라 있는 가장 무서운 선수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앙리만큼 많은 골을 넣으면서 동시에 앙리만큼 많은 어시스트를 해내는 선수는 축구사 전체를 통해서도 그리 흔치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신구(新舊) 마법사’ 두 명을 보유한 프랑스는 그들의 재능만큼이나 큰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단과 앙리의 동시 기용이 ‘시너지 효과’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고 있는 까닭이다.
지단의 100번째 A매치 출장이었던 멕시코전에서 그의 다리는 매우 무거워 보였다. 이따금씩 발휘되는 우아한 터치와 패스로 “수준은 영원하다”는 축구 격언을 증명해 보이기는 했지만, 지단의 플레이 위력은 ‘젊은 피’ 플로랑 말루다(리옹)와 프랑크 리베리(마르세유)의 실효성에 미치지 못했다. 앙리와 함께 기용된 덴마크전에서 그 비효율성은 더욱 두드러졌는데, 앙리에게 연결되는 프랑스의 위협적인 패스들이 대부분 지단의 발끝과는 무관하게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앙리는 소속 클럽 아스널에서 수많은 골을 작렬시키면서 동시에 그라운드 전체를 지배하는 역할에도 익숙해 있는 선수다. 그리고 앙리는 그렇게 뛸 경우에 가장 위력적이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지단의 존재는 여전히 프랑스의 중심을 앙리가 아닌 지단이게끔 한다. 앙리는 프랑스가 추구하는 이러한 시스템에 불편함을 느껴온 지 오래다.
또한 앙리와 지단은 동선에 있어서도 다소간 중첩된다. 두 선수는 모두 왼쪽과 중앙 사이의 어딘가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전반적으로 느려진 지단의 플레이는 전광석화 같은 스피드를 최대 무기로 하는 앙리의 축구와는 그다지 걸맞지 않는다. 지단이 중원에서 볼 소유권을 유지하며 게임을 조율하는 바로 그 시간이 앙리에게 있어서는 실효성 없이 소모되는 시간이다. 앙리는 자신에게 볼이 좀 더 빠르게 전달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렇듯 무언가 삐걱거리는 ‘지단+앙리’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팀들에 ‘쉽지 않은 과제’가 주어지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성기를 넘긴 지단이지만 그에 대한 수비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따로 노는’ 앙리와 지단이 만약 따로따로 독자적 마법을 부리면 어떻게 되는가? 어쩌면 이것이 축구의 미묘함이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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