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 홍코치가 말문을 텄다. “후∼.” 몰아쉬는 숨소리가 유난히 길었다.
운재는 머리를 긁적였다. 대화는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자신감 가져라.
기를 살려라. 할 수 있다….” 시계는 오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가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그가 다시 움직이자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37) 한국축구대표팀 코치. 그늘에서 조용히 도우미 역할만 하던 그가 한국 축구의 16강 진출을 위해 전면에 나섰다. 2006 독일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최근 벌인 노르웨이(0-0 무), 가나(1-3 패)와의 평가전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태극전사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쾰른 결의’를 주도한 것이다.
한국축구대표팀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독일 쾰른으로 이동해 베르기슈글라트바흐의 슐로스 벤스베르크 호텔에 여장을 푼 6일 오후 11시(현지 시간). 홍 코치는 숙소에서 정기동(45) 골키퍼 코치, 주장 이운재(33·수원 삼성)와 만나 ‘깊은 밤의 대화’를 나눴다.
태극전사들을 잘 알고 있는 한국팀 코치로서 팀 리더와 함께 각오를 새롭게 하고 의기소침해진 선수들의 기를 살려 주자는 게 대화의 요지였다.
“솔직히 노르웨이,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와 다소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현재 대표팀 분위기가 너무 침체돼 있다는 것이다. 빨리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술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정신적 회복이 중요하다. 자신감을 빨리 찾아야 하고 선수단이 더욱 굳게 단결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장점은 많다. 이른 시간 내에 팀을 재정비해서 다시 뛰자. 주장이 선수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이제 결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선수들에게도 이 부분을 잘 전달해 토고전을 앞두고 자신감을 되찾고 필승의 의지를 굳게 다지도록 하겠습니다. 선수들도 잘 알아들을 겁니다.”
이운재는 주장으로서 훈련 전후에 비슷한 얘기를 선수들에게 많이 했다. 하지만 ‘명보 형’의 말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이운재는 그 의미를 선수들에게 전달하겠다는 뜻.
2002 한일 월드컵 때 최종 수비수와 듬직한 수문장으로 4강 신화를 창조했던 홍 코치와 이운재. 둘의 결의만으로도 선수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사실 홍 코치와 이운재의 심야 대화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핌 베르베크 수석코치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평소 홍 코치가 선수들의 분위기를 파악해 잘 컨트롤하고 있었지만 평가전을 마친 뒤 분위기가 너무 침울해지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특히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함께 창조한 베르베크 코치가 홍 코치에게 선수들 사기 문제와 정서적인 부분에 적극 개입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 베르베크 코치는 한마디로 홍 코치는 선수들에게 정신적 지주란 점을 잘 알고 있다.
베르베크 코치는 코칭스태프를 절대적으로 따르며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태극전사들의 최대 장점으로 보고 있다. 그 장점을 홍 코치의 카리스마로 끌어내려 한 것이다.
그동안 코치보다는 선수들의 ‘맏형’으로서 고민을 해결해 주고 연습경기 때 선수가 모자라는 팀에 ‘깍두기’로 끼어 훈련 파트너 역할을 해 왔던 홍 코치도 대표팀 분위기가 침체되자 고민이 많았다. 자신이 전면에 나설 경우 해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주저하고 있었는데, 아드보카트 감독과 베르베크 코치의 주문에 힘을 얻어 자신 있게 나서게 된 것이다.
쾰른=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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