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떠났는데도 그들은 똑같았다. 이어폰을 끼고 몸을 흔들며 “어쨌든 우리는 이길 것”이라고 했다.
오토 피스터 감독이 “더는 못해 먹겠다”며 떠난 다음 날인 11일 토고축구대표팀 선수들의 표정이다. 독일 남부 방겐의 발터스뷜호텔과 훈련장인 알고이슈타디온에 모습을 드러낸 선수들의 얼굴은 밝았다. 지휘자가 없는데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분위기였다. “감독이 떠났는데 어떠냐”는 질문에 “우리는 이길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국의 2006 독일 월드컵 G조 첫 상대 토고가 선장을 잃고 자중지란에 빠졌다. 피스터 감독은 10일 로크 냐싱베 토고축구협회장에게 사의를 표명한 뒤 자택이 있는 스위스로 떠나버렸다. 1월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 3전 전패로 예선 탈락한 뒤 스티븐 케시 감독이 경질된 데 이은 최악의 상황이다.
○ 감독이 떠난 이유=스위스 종합일간지 ‘24시간’에 따르면 피스터 감독은 그동안 출전 수당을 둘러싼 잡음 때문에 제대로 훈련을 못했다고 사퇴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월드컵을 준비하는 것이 더는 가능하지 않았다”며 “선수들이 계속 파업을 했고 지금까지는 이럭저럭 넘어갔지만 더는 의미가 없었다. 모든 책임은 토고축구협회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토고축구협회는 지난해 본선 진출 때와 올해 아프리카네이션스컵 때 거액의 수당을 주기로 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선수들의 불만이 쌓여 왔다. 게르송 크와조 토고 단장은 “협회가 해 줄 수 있는 것과 선수들이 요구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솔직히 우리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 선장 없는 토고는=토고축구협회는 10일 오후 코조비 마웨나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일단 임명했다. 하지만 11일 독일 출신의 빈프리트 셰퍼 전 카메룬 감독을 방겐의 훈련 캠프로 불러 새 감독으로 영입하기 위한 협상을 벌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카메룬축구대표팀을 이끌었던 셰퍼 감독은 “선수들의 수당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감독직을 맡을 것”이라며 토고축구협회 관계자와 협상을 했다.
토고축구협회의 아쿠사 카밀 기술위원장은 “셰퍼 감독과 협상 중이다. 하지만 한국과의 경기가 이틀밖에 남지 않아 한국전에는 마웨나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 한국에는 득일까?=일단은 유리할 전망. 전술상에 큰 혼란은 없겠지만 흐트러진 선수단 분위기를 짧은 시간에 바로 잡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토고는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도 에마뉘엘 아데바요르가 케시 전 감독과 갈등을 빚는 바람에 팀 분위기가 악화돼 3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자극을 받은 선수들이 막상 경기에서는 놀라운 기량을 발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토고협회나 정부가 막판에 돈을 쏟아 부어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도 있다.
○ 토고 정부 반응=토고 정부는 11일 홈페이지(www.republicoftogo.com)를 통해 “우리 선수들은 월드컵 출전 기회를 가진 것에 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과연 선수인지 은행원인지 알 수가 없다”며 “조국에 대한 최소한의 자긍심도 보여 주지 않는 그들은 월드컵을 돈벌이 수단으로 바라보는 사업가와 별 차이가 없다”고 비난했다.
방겐=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G조 감독들 반응
한국축구대표팀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오히려 토고 선수들의 응집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한국에 유리하지만은 않다”고 분석했다. 자칫 한국 선수들의 기강이 흐트러질 것도 경계했다. 또 한국이 13일 G조 첫 경기에서 토고에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경우 역효과가 클 것을 우려하고 있다.
프랑스의 레몽 도메네크 감독은 “피스터는 할 일이 매우 많은 사람인가 보다”라고 농담부터 던졌다. 그러면서 “내 임무는 프랑스팀을 월드컵 마지막 경기까지 끌고 가는 것뿐”이라며 “나와 프랑스와는 상관없는 토고만의 일”이라고 받아넘겼다. 그는 “토고전은 프랑스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라며 “현재 프랑스에 가장 중요한 것은 스위스와의 첫 경기”라고 강조했다.
스위스의 야코프 쾨비 쿤 감독도 같은 반응. 쿤 감독은 “놀라운 일이지만 우리의 관심 대상은 아니다. 토고가 예전보다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쾰른=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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