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바요르’… 고추장 축구 > 도깨비 축구

  • 입력 2006년 6월 14일 03시 09분


《아프리카의 리듬은 흥겨웠다. 때론 거칠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리랑의 리듬 앞에선 흥을 잃었다.

이천수에 이은 안정환의 연속골. 5000만 개의 심장이 멈췄다.

아듀! 아데바요르. 굿바이 토고.》

먼저 골을 먹었다. 지는 줄 알았다. 휴∼ 이천수가 넣었다. 안정환도 넣었다. 이겼다. 잘했다. 붉은 밤. 시종 가슴 졸인 밤. 축구란 이런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것이다. 축구장에선 언제 무엇이 일어날지 모른다. 공은 둥글다. 어디로 구를지 아무도 모른다.

이천수의 동점골이 터지자 모두 ‘타는 목마름’으로 “대∼한민국”을 외쳤다. 얼싸안고 춤을 췄다. 노래를 불렀다. 발을 굴렀다.

○ 박지성-이천수 합작골로 주도권 장악… 역시 큰 경기엔 큰 물 경험

시종 손에 땀을 쥔 경기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영웅 안정환-박지성-이천수 트로이카가 한국을 살렸다. 역시 큰 경기에선 큰물에서 놀아 본 경험이 중요하다. 한국의 불같은 투지가 눈물겨웠다. 한국선수들은 마지막 남은 땀 한 방울까지 모두 쏟아냈다.

이천수의 동점 프리킥 골이 천금같았다. 이 골로 한국은 완전히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게임을 완전히 지배했다. 물론 프리킥을 얻어내 토고선수의 퇴장을 이끌어낸 박지성의 공은 백번 천번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번 불붙은 한국의 거센 물결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토고는 후반부터 눈에 띄게 체력이 떨어졌다. 후반 중반부터는 그냥 서 있는 선수도 군데군데 보였다. 10명이 싸울 수밖에 없는 토고로선 당연했다. 게다가 토고는 훈련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 전후방 가리지 않는 전천후 폭격기… 아데바요르는 강했다

토고는 역시 도깨비 팀다웠다. 변변히 전술훈련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팀치고는 매서웠다. 전반 31분 토고 선제골은 단 한번의 틈새를 찌른 독침이었다. 예리했다. 뼈아팠다. 역시 수비가 문제였다. 세계적인 전문킬러 에마뉘엘 아데바요르를 막기 위해 채택한 스리백도 아프리카 선수들의 탄력과 스피드, 개인기엔 어쩔 수 없었다. 토고는 패스도 발에 쩍쩍 달라붙었다. 그러나 전반까지가 한계였다. 한국선수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불굴의 투지로 밀어붙였다.

한국은 역시 세트피스 상황에서 강했다. 한국은 이전까지 역대 월드컵 19골 중 37%인 7골을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넣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전 허정무의 골을 시작으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전 황보관의 캐넌포,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전 하석주의 프리킥 골이 바로 그렇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터키전 이을용의 프리킥 골 등도 마찬가지. 이천수의 프리킥 골은 한국의 월드컵 경기 20번째 골이자 8번째 프리킥 골. 안정환은 월드컵에서만 3골이나 넣었다.

토고는 그동안 가볍게 슬슬 몸을 풀거나 족구를 하면서 ‘수당 파업’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돈 다툼’을 하면서도 시종 느긋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웃으면서 떠들었다. 외국 기자들과 거리낌 없이 인터뷰도 했다. 저마다 자기 마음대로, 따로따로였다. 아데바요르는 “아프리카 축구에서 돈 문제는 흔한 일”이라며 “준비는 완벽하다. 난 승리에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스나이퍼(저격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한 경기였다. 아데바요르는 골잡이라기보다는 전후방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였다.

○ 절묘한 선수교체… 히딩크 이어 아드보 ‘제2의 매직’

한국의 스리톱 박지성(176cm)-조재진(185cm)-이천수(172cm)는 전반 실점 후 거세게 몰아붙였지만 예리한 맛이 부족했다. 투박했다. 한국의 키플레이어 박지성은 이중 삼중 마크에 시달렸다. 토고의 포백수비진 아세모아사(184cm)-니봄베(196cm)-아발로(177cm)-창가이(183cm)의 뒷공간은 패스의 부정확 때문에 쉽게 열리지 않았다. 후반 이천수의 프리킥 골 성공 이후에야 비로소 예리한 맛이 살아났다. 박지성도 펄펄 날며 상대 진영을 휘젓고 다녔다. 가위 폭발적이었다.

이겼지만 아프리카 축구는 무서웠다. 그들은 대부분 도시 뒷골목이나 시골의 맨땅 공터에서 나온다. 그들은 그곳에서 규율 질서 통제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진난만하고 신나게 공을 찬다. 그들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축구를 배우지 않는다. 그러나 들꽃처럼 스스로 눈부시게 꽃을 피운다. 그들에겐 리더가 없었다. 오토 피스터 감독이 가출소동을 벌인 끝에 복귀했지만 팀을 추스르기엔 너무 늦었다.

그렇다. 후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선수교체는 히딩크 못지않았다. 후반 김진규를 빼고 안정환을 투입한것은 절묘했다. ‘작은 장군’다웠다. 역시 한 마리 사자가 이끄는 백 마리 사슴군대가, 한 마리 사슴이 이끄는 백 마리 사자의 군대보다 백배 천배 강했다. 여기에 한국선수들은 ‘성난 호랑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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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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