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스트라이커와 거친 몸싸움. 그를 묶지 못하면 골을 먹는다.
누가 말했던가. 명수비수 1명 만드는 일이 명공격수 10을 만드는 것보다 힘들다고.
음지에서 피는 꽃. 그래서 더 처절한 꽃. 그는 축구화를 신은 꽃이다.》
#1
○서른다섯 월드컵 마지막 무대… “아데바요르 별로더군요”
2006 독일월드컵 H조 예선 튀니지 vs 사우디아라비아
어차피 마지막 월드컵 무대다. 4년 후면 만 서른아홉. 마음은 뛰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을지 모른다. 서른다섯도 이미 노장이다. 맏형의 역할은 올해까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자신 있다. 누구와 맞붙어도 이길 수 있다. 90분 내내 지치지 않고 뛸 체력도 있다. 명성에서야 유럽의 큰 무대에서 뛰는 쟁쟁한 젊은 공격수들에 뒤질지 모른다. 몸값이나 평가가 그들에게 뒤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 대항전은 다른 문제다.
정신력이다. 기어이 그들을 막아 낼 ‘싸움 혼’이 여전히 핏줄에 흐르고 있다.
한국축구대표팀의 맏형 최진철(35·전북 현대)이 13일 토고전에서 다시 한번 그의 가치를 입증했다. 이 경기에서 최진철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주전 스트라이커 에마뉘엘 아데바요르를 꼼짝 못하게 묶었다. 최진철에게 막힌 아데바요르는 프리미어리거의 위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아데바요르는 비싼 선수다. 올 초 프랑스 AS모나코에서 아스널로 옮긴 그의 이적료는 700만 파운드(약 126억 원). 아데바요르에 대해 최진철이 경기를 끝내고 남긴 말은 한마디였다. “별로였다.” 그것으로 끝이다.
#2
○히딩크가 믿는 센터백… 2002년 월드컵 때 내로라하는 공격수 꽁꽁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꾸준히 포백 시스템을 시도했었다. 포백 시스템은 양쪽 윙백이 수시로 공격에 가담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포메이션이다. 중원에서 상대를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어 유럽 팀들은 대부분 포백 시스템을 쓰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수비수들이 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지역 방어 위주의 전술이어서 조직력이 필요한 데다 체력 소모가 많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월드컵 본선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히딩크 감독은 3명의 ‘전문 수비수’를 두는 스리백 시스템을 번갈아 사용했다.
스리백은 지역 방어보다는 대인 방어가 주가 된다. 그래서 스리백을 쓰는 팀에는 상대 스트라이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센터백이 한 명쯤은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은 몸을 아끼지 않고 부닥친 수비수들의 투혼으로 세계 축구의 내로라하는 강호들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쉽지는 않았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김태영은 코뼈가 부러졌고, 최진철은 탈진해 경기를 끝내고 링거주사를 맞아야 했다. 그래도 그들은 임무를 완수했다. 이겼다.
#3
○비에리, 클로제를 넘어 이번엔 앙리, 프라이를 묶어라
2006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 그가 훈련에서 추구했던 것은 포백 시스템이었지만 토고전에서 꺼내 든 카드는 스리백이었다. 이제 2002년의 수비 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투혼만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홍명보와 김태영은 은퇴했지만 최진철이 아직 그라운드를 지키며 후배들에게 그날의 정신을 전해주고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과 맞선 팀의 스트라이커는 어김없이 최진철이 맡아야 할 몫이었다. 폴란드의 에마누엘 올리사데베, 이탈리아의 크리스티안 비에리,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의 ‘스타’가 최진철의 상대였다. 비에리의 득점을 제외하면 공중전에서 밀린 적은 없다.
2006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토고의 아데바요르,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와 스위스의 알렉산더 프라이를 차례로 막아야 할 임무가 최진철에게 주어졌다.
아데바요르는 이미 넘어섰다. 남은 것은 앙리와 프라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수들이지만 큰 걱정은 없다. 한번 산을 올라본 사람은 다른 산도 두렵지 않다.
축구 팬들은 최진철이 ‘그 말’을 되풀이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별로였다.”
쾰른=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2006 독일월드컵 H조 예선 튀니지 vs 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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