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룰라 대통령이 8일 대표팀과의 화상대화 때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에게 “호나우두가 너무 살찌지 않았느냐”고 물어본 것. 당사자인 호나우두는 별 말이 없었지만 브라질 여론은 ‘모욕적’이라며 들고일어났다. 호나우두는 2004년 룰라 대통령 부부에게 금을 입힌 축구화를 선물했고, 룰라 대통령은 호나우두를 종종 만찬에 초대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이 사건을 소개한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룰라 대통령으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전했다. “1억8500만 명의 축구팬이 있는 브라질은 일간 신문의 총발행부수가 200만 부에 불과하다. 민심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힘은 축구에서 나온다. 올가을 재선을 바라고 있는 룰라 대통령으로서는 여론이 악화되기 전에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최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독일 주간지 ‘빌트 암 존탁’ 기고문에서 “유엔은 회원국 수도 많고 사람들의 관심도 높은 월드컵이 부럽다”고 밝혔다. 과연 축구가 국제기구보다 힘이 셀까.
최근 독일 일간지 ‘디 벨트’는 ‘축구공은 혁명의 힘을 가졌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축구는 정치만큼 힘이 셀 뿐 아니라 실제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고 소개했다.
1980년대 영국 리버풀은 인종주의의 온상이었다. 흑인 이민자에 대한 폭력이 줄을 이었다. 자메이카 출신 존 반즈를 영입한 리버풀 축구팀이 1988년부터 리그 우승 등 호성적을 잇달아 거머쥐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흑인 대상의 폭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리버풀은 악명을 벗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시민운동그룹 ‘빵과 사랑’이 축구의 힘을 빌려 대중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들은 큰 경기에 앞서 선수들에게 ‘교육에 매는 필요 없습니다’ 등의 구호가 쓰인 티셔츠를 선물하고, 이는 TV로 전국에 방송돼 국민의 일상 대화 주제로 등장한다. ‘빵과 사랑’ 관계자는 “국민의 영웅인 축구 선수들의 명성에 힘입어 예전보다 훨씬 원활하게 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내전으로 분열된 나라에 축구가 좋은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 북부에 터전을 둔 반군은 평화협정에 의해 정부에 참여하다 다시 분열해 정부를 공격하기를 반복해 왔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후 양측에는 대체로 평화가 유지돼 왔다. 아프리카 전문가들은 “코드디부아르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경우 내전의 완전한 종식을 위한 평화무드가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제는 잊혀져 가고 있지만 축구가 실제 전쟁을 부른 사례도 있다. 1969년 중미의 온두라스가 엘살바도르에서 넘어온 불법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하면서 양국 간의 감정이 악화됐다.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에 승리하자 두 나라에서는 상대방 국민에 대한 폭력 행위가 이어졌고, 결국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를 침공했다.
무력 행위는 나흘 만에 끝났지만 평화협정은 11년이 지난 1980년에야 체결됐다. ‘침략자’로 낙인찍힌 엘살바도르는 주변 국가들로부터 무역제재를 받으며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프랑크푸르트=유윤종 특파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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