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스코틀랜드 전지훈련장에서 발목을 다친 뒤 그라운드를 걸어 나가는 김남일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입이 무거운 그였지만 더욱 입을 다물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호는 기도하는 자세로 그라운드에 나선다. 그에게 올해 월드컵은 최초로 찾아온 대형 무대이다. 그는 평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한 기회를 일찌감치 잡았다. 당연히 몸을 던진다.
한국팀은 첫 경기인 13일 토고전에서 신인 이호를 선발 출전시켰다. 김남일은 후반에 투입됐다.
이호는 힘이 좋고 수비력이 강하다. 젊고 체력이 튼튼하다. 김남일은 이전 월드컵에서 뛰어 본 경험이 있다.
이호가 토고전에서 선발로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적극적인 수비 능력 때문이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김남일이 부상에서 회복 중이라 90분을 풀타임으로 뛸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호는 토고전에서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됐다. 우선 이을용과 호흡이 안 맞아 초반 다소 리듬을 빼앗겼다. 또 볼 터치가 너무 길어 상대 수비에게 쉽게 공을 가로채이는 모습도 보였다. 뒤따라오는 선수에게 공을 빼앗겨 결정적인 위기를 초래할 뻔했다. 전방으로의 날카로운 패스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월드컵 첫 경기여서 부담스러운 모습이었다.
김남일이 프랑스전에 나서면 ‘아트 사커’의 지휘자 지네딘 지단과 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김남일은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지단을 적극 마크했다. 그의 거센 플레이로 지단은 부상했고 개막전에 뛰지 못했다. 지단이 빠진 프랑스는 세네갈에 패해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하지만 김남일은 예전과 같은 파워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몸 상태 때문이다. 그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남일은 수비형 미드필더지만 패스의 정확도가 높다는 평을 듣는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프랑스전에 대해 “스리백을 바탕으로 경기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스리백일 경우 중앙 미드필더로 두 명이 나서게 된다. 우선 최근 경기 감각이 좋은 이을용이 다시 한번 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 이을용에게 좀 더 공격적인 파트너를 붙인다면 김남일이, 좀 더 수비적인 선수를 붙인다면 이호를 기용할 것이다.
이호는 첫 경기에서 다소 부진했지만 값진 경험을 했다. 김남일은 현재로선 명성이 높지만 자칫 선수생활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이호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이호는 “첫 경기에서 경험 많은 선수가 많이 이끌어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김남일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초반 기선싸움에 밀리지 않으려면 더욱 안정적인 선택을 위해 일단은 김남일을 선발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체력 소모가 많은 중원 싸움의 양상을 보면서 이호를 대체로 내세울 수도 있다. 어차피 두 선수는 대표팀 내에서 가장 많이 뛰는 포지션에 있다.
쾰른=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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