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36분 박지성의 동점골은 아름다웠다. 그 골은 박지성의 발끝에 살짝 걸렸다. 그리고 프랑스 골키퍼 파비앙 바르테즈의 손끝을 스쳤다. 그러면서 프랑스 골문 왼쪽 모서리 쪽으로 활처럼 살짝 휘어 들어갔다. 프랑스 수비수 윌리암 갈라스(5번)는 그저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발을 뻗어도 딱 30cm 정도가 먼 거리였다. 볼은 이미 “헤에∼”하고 골 그물에 누워 웃고 있었다. 그는 볼을 집어 내 중앙선 쪽으로 냅다 내질렀다. 티에리 앙리는 말했다. “한국선수들은 위협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멍청한 골을 내줬다.” 지네딘 지단은 땅을 쳤다. “추가골을 넣었어야 했는데…. 그게 나오지 않아 동점골을 먹을까 내내 불안했다.” 후반 인저리 타임에 지단과 교체돼 들어간 다비드 트레제게는 뭔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내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냉소적인 표정이었다.
‘수탉’ 프랑스의 부리는 무뎠다. 발톱도 뭉툭했다. 발걸음엔 힘이 없었다. 깃털은 군데군데 빠져 옛날의 위엄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전반까지 게임을 지배한 것은 오직 경험과 노련함의 힘이었다. 한국은 밀릴 수밖에 없었다. 허리가 잘려 전방 공격수들은 전반에 단 1개의 슛(프랑스 7개)을 날리는 데 그쳤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프랑스 한계였다. 게다가 그들은 모래알이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이렇다 할 선수가 없다. 박지성도 그들의 눈엔 ‘좀 잘하는 선수’일 뿐이다. 프랑스는 이름만으로도 23명 전원이 박지성을 능가한다. 아무리 보아도 한국은 그들의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을 넘어서지 못했다. 한국은 불같은 투혼으로 후반부터 프랑스를 몰아붙였다.
한국축구는 풋풋하다.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살아있다. 투박하지만 싱그럽다. 팀에서 개인은 없다. ‘하나 된 모두, 모두 된 하나’가 있을 뿐이다. 프랑스팀엔 ‘멍청한 골’이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팀엔 모든 골이 아름답고 멋지다.
박지성의 골은 우리 모두 만들어 낸 것이다. 4800만 붉은 마음이 한데 뭉치고 다지어, 마침내 한 송이 ‘붉은 연꽃’을 피운 것이다. 팬과 선수들의 피와 땀과 눈물 속에 핀 꽃이다. 캐넌슛, 대포알 같은 슛이 들어가야만 멋진 골이 아니다. 힘없이 굴러들어간 골도 보석 같은 골이다.
이글이글 타오른 붉은 신 새벽. 모두들 목이 터져라 타는 목마름으로 외쳐 부른 “대∼한민국”. 그 순간 한국인들은 모두 펄펄 끓는 쇳물이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용암이었다. 그 열정, 그 에너지, 그 뜨거움.
축구는 열정이다. 겸손이다. 꿈이다. 불확실성이다. 경기장에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앙리의 골이 멋지듯이, 박지성의 골도 똑같이 아름답다. 잠시라도 교만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한순간 방심하면 모든 게 사라진다.
하품 나고 재미없는 세상. 이 주리를 틀어도 시원찮을 강호세상. 고맙다, 젊은 그대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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