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축구대표팀을 4강에 올려놓은 거스 히딩크(60) 감독에 대해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축구 지도자가 던진 말이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운이 받쳐 주지 못한다면 4강 신화를 창출하기는 어려웠다는 것. 홈 어드밴티지와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등 여러 가지 주변 상황이 도움을 줬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 2002년 한국 4강 이어 2006년엔 호주 16강 마법
하지만 이제 히딩크 감독이 이룬 한국의 4강 신화가 운이었다고만 말하긴 어렵게 됐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호주는 23일 크로아티아와 2-2로 비기고 1승 1무 1패를 기록해 브라질에 이어 F조 2위로 사상 처음 16강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히딩크 감독이 지난해 7월 위기의 호주 대표팀을 맡아 11월 남미-오세아니아 플레이오프에서 우루과이를 누르고 호주를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았을 때만 해도 설마 했는데 탁월한 용병술로 16강 진출마저 이루자 세계가 놀라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탁월한 용병술을 갖고 있다. 월드컵 경험이 거의 없는 호주의 문제점을 철저하게 파악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준비한 뒤 치밀한 전략 전술로 1차 목표를 이뤘다. 히딩크 감독은 호주의 약점이 뒷심 부족이며 이는 약한 체력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월드컵 직전 3주 동안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시켰다. 2002년 태극전사들에게 실시한 공포의 ‘파워 프로그램’을 적용한 것이다. 호주 언론에 따르면 선수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몰아붙였다는 것.
히딩크 감독은 맹훈련과 함께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도 뛰어나다. 호주 대표팀의 주장이자 간판 공격수인 마크 비두카(미들즈브러)가 “히딩크 감독을 위해서라면 그라운드에서 쓰러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할 정도다.
히딩크 감독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이름보다는 실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고 선수들의 특성을 자세하게 파악해 칭찬과 꾸중을 번갈아 가며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다. 여기에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이를 향해 선수들을 집중하도록 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 명성 대신 실력으로 발탁… 마법의 끝은 어디
용병술도 세계 최고. 12일 일본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교체 선수를 투입해 8분 만에 3골을 뽑아낸 히딩크 감독. 이날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도 1, 2차전에서 골문을 지키던 마크 슈워처를 빼고 젤코 칼라치에게 수문장 역할을 맡기는 ‘깜짝 용병술’로 무승부를 견인했다. 호주는 크로아티아에 질 경우 16강 진출의 꿈이 산산조각나기 때문에 주전 골키퍼가 아닌 칼라치에게 골문을 맡긴 것은 모험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브라질과의 경기 때 슈워처의 플레이에 만족하지 못한 히딩크 감독은 칼라치를 내세웠다. 슈워처를 자극하고 칼라치가 크로아티아 출신이라는 점을 역이용했다. 칼라치는 2골을 내줬지만 주장 비두카를 비롯한 제이슨 컬리나 등 크로아티아계 선수들과 조화를 이뤄 조직력을 탄탄하게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아마도 히딩크 감독은 자극받은 슈워처를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 내보낼 것이다.
히딩크 감독이 보여 줄 ‘마법’의 끝은 어디일까.
하노버=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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