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다시 삶의 현장으로…행복했던 광장의 밤

  • 입력 2006년 6월 26일 03시 12분


4년 뒤를 기약하며… 막내린 축제많은 국민이 월드컵축구 한국 대표팀의 16강전 탈락에 허탈해하면서도 다시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수많은 응원 인파가 모여들었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설치됐던 무대도 철거됐다. 연합뉴스
4년 뒤를 기약하며… 막내린 축제
많은 국민이 월드컵축구 한국 대표팀의 16강전 탈락에 허탈해하면서도 다시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수많은 응원 인파가 모여들었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설치됐던 무대도 철거됐다. 연합뉴스
“축구보다 축제가 더 즐거웠어요. 길거리 응원 그 자체를 즐겨서 그런지, 결과에 승복하고 일상에 쉽게 돌아왔습니다.”(회사원 박석호 씨·31)

2006 독일 월드컵 한국-스위스전을 끝으로 도심에서 치러지던 광장의 축제는 끝났다. 이제 일상에서 자신의 축제를 찾아야 할 때다.

심판의 오심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최선을 다해 싸운 선수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면서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이어 벌어진 올해 한국의 월드컵 거리응원은 우리 사회의 독특한 문화현상을 넘어 세계적인 ‘놀이’로 확산됐다.

이주향 수원대 교양학과 교수는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해 가장 아쉬운 점은 밖으로는 전 세계에 우리의 문화를 알리고 안으로는 우리를 결집시켰던 길거리 응원의 축제가 중단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24일 스위스전에서 졌지만 응원에 나섰던 사람들이 비아냥 대신 최선을 다해 싸운 선수들을 격려하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며 “이렇게 패배를 통해서도 뭔가를 배우고,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자긍심을 가진 민족의식으로 전환되는 경험은 이후에도 우리에게 소중하게 남을 자산”이라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의 길거리 응원은 2002년에 비해 자발성, 참여의식, 주인의식은 약화된 반면 수동성, 구경꾼, 손님의 심리는 강화됐다”고 평가하면서 “월드컵 거리응원의 경험을 카니발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어떻게 다르게 소화할 것인지가 이후의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단기간에 실컷 즐긴 뒤 지지부진하고 힘든 일상의 삶으로 복귀하는 카니발의 심리 대신 광장에서 발산했던 에너지를 자신의 삶으로 돌려 ‘내 일상의 월드컵’은 무엇인지, 일상을 어떻게 축제로 만들지를 각자 찾아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올해는 길거리 응원이 ‘의미’보다 ‘재미’로 중심축이 옮겨 가며 월드컵 자체를 문화적으로 즐기게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족’이라는 이름의 놀이기구를 타듯 길거리 응원은 테마파크의 놀이와도 같은 양상을 띠었다. 집단주의에 반대하는 ‘안티 월드컵’을 공공연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올해의 긍정적인 변화다.

반면 대기업이 개입해 거리응원을 대형 버라이어티쇼처럼 만들고 방송의 무분별한 동시 중계로 상업화가 심했던 점은 이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2002년 응원은 붉은악마가 만들어 내는 스펙터클이었다면 식순에 따라 움직이는 올해의 응원은 방송사가 만들어낸 스펙터클이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월드컵으로 시민의 축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대기업과 방송이 축제에 참여한 시민을 소비자 내지 방청객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최정한 공간문화센터 공동대표는 “심야와 새벽 시간대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열정과 에너지가 놀랍다”며 “이제 무엇이든 계기만 주어지면 광장에서 함께 즐기는 것이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학습되어 버린 듯하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기업과 행정이 자발적 판이 형성될 때까지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은 좋지만 과시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려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상업성의 극복과 집단적 에너지의 문화적 업그레이드”를 이후의 과제로 꼽았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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