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 vs 우크라이나
“케 세라 세라∼.” 노래가 결말을 암시한 걸까.
승부차기가 시작되기 전 2만여 스위스 응원단은 ‘결과는 알 수 없으니 흘러가는 대로 두어라(케 세라 세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경기 내내 상대팀에 무차별 야유를 퍼부었던 데 비하면 어울리지 않는 노래였다. 스위스 응원단은 이 노래로 선수들의 부담을 줄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27일 독일 쾰른 라인에네르기슈타디온에서 열린 스위스-우크라이나의 16강전. 전후반과 연장전을 0-0으로 마치고 승부차기가 시작됐다.
우크라이나의 첫 키커 안드리 t첸코의 슛을 스위스 골키퍼 파스칼 추베르뷜러가 오른쪽으로 넘어지며 막아 냈다. 하지만 스위스 마르코 슈트렐러의 첫 번째 킥을 우크라이나 골키퍼 올렉산드르 숍콥스키가 오른쪽으로 넘어지며 역시 막아 내자 분위기는 바뀌었다.
기운이 살아난 우크라이나 두 번째 키커 아르y 밀렙스키는 공을 강하게 차는 척하다 속도를 줄였다. 공은 골키퍼가 넘어진 뒤 천천히 중앙으로 빨려 들어갔다. 초조해진 스위스의 두 번째 키커 트란퀼로 바르네타와 세 번째 키커 리카르도 카바나스는 잇달아 실축했다. 우크라이나의 3-0 승.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스위스 팬들은 승리에 눈이 멀어 맹렬한 야유를 퍼부었다. 스위스의 파울로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쓰러져 들것에 실려 나가도 극심한 야유가 줄곧 쏟아졌다. 주심은 이 같은 위세에 눌려 후반 스위스가 문전에서 결정적 반칙을 했는데도 몇 차례 외면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우크라이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고 결국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매너 없는 응원전을 펼친 스위스의 지나친 승리 욕구가 결국 선수들의 부담을 키워 패배를 자초한 셈이 됐다.
쾰른=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명장 히딩크의 포용력
○ 이탈리아 vs 호주
후반 인저리타임 때 페널티 지역 내 오른쪽에서 호주 루커스 닐이 이탈리아 파비오 그로소와 부딪치자 주심 메디나 칸탈레호(스페인)는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순간 거스 히딩크(60) 호주 감독은 흥분해 날뛰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관중의 야유 속에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토티가 페널티킥을 성공한 뒤 종료 휘슬이 울리자 곧바로 냉정을 되찾았다. 분통을 터뜨리며 눈물을 흘리는 제이슨 컬리나의 머리를 감싸고 위로하는 등 흥분한 선수들을 진정시킨 뒤 주심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역시 명장은 달랐다. 오심의 여지가 있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히딩크 감독은 27일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 프리츠발터슈타디온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애매한 판정 탓에 0-1로 석패했지만 모든 것을 수용하고 오히려 ‘호주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히딩크 감독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페널티킥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충돌이었다. TV 화면 리플레이도 페널티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줬다. 하지만 심판은 페널티킥을 주었고 결국 우리는 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라며 더 문제 삼지 않을 뜻을 밝혔다. 그는 “이렇게 대회를 끝내게 돼 매우 실망스럽다. 우리는 득점하지 못했을 뿐 모든 것을 만족스럽게 풀어 갔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한국의 4강 신화를 창출했던 히딩크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령탑이었다. 지난해 7월 위기의 호주축구대표팀을 맡아 탁월한 용병술과 전술로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룬 데 이어 16강에까지 오르자 세계의 언론은 그를 ‘현존하는 최고의 명장’이라고 평가했다. ‘히딩크의 마법’은 이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세계는 히딩크 감독의 포용력에 다시 한번 탄복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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