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두 경기에서 기대만큼의 경기력을 보여 주지 못했던 브라질은 일본과의 세 번째 경기를 통해 ‘왜 자신들이 세계 최고의 팀인가’를 증명했다. 브라질과 일본의 경기는 축구에서 ‘일대일 기량에서의 우위’가 얼마나 유리한 것인가를 잘 보여 준 한판이었다. 끊임없이 볼 소유권을 유지하는 브라질 선수들의 섬세한 발재간과 패스 능력은 일본의 미드필더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고 제풀에 주저앉게 했다.
조별 리그를 통해 가장 안정된 경기력을 펼쳤던 아르헨티나는 리오넬 메시와 카를로스 테베스, 후안 로만 리켈메를 앞세워 ‘삼바’와는 또 다른 ‘탱고’ 리듬을 보여 줬다. 여기에 후안 소린과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에스테반 캄비아소가 앞 선의 동료들이 마음껏 탱고를 출 수 있게 하는 기반을 만든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에서 리켈메, 하비에르 사비올라, 에르난 크레스포가 함께 만든 캄비아소의 골은 이번 대회 최고의 ‘팀 골’이었다.
네덜란드와 볼썽사나운 난투극을 벌였던 ‘유럽의 브라질’ 포르투갈이 8강에 오른 원동력도 세밀함과 정교함 덕택이었다. 슈팅 수와 볼 점유율에서 네덜란드에 뒤졌던 포르투갈은 데쿠를 중심으로 한 섬세한 플레이 한 방에 힘입어 네덜란드에 치명상을 입혔다. 퇴장으로 인한 수적 열세의 상황 또한 루이스 피구, 시망 사브로자 등의 적절한 볼 키핑 능력을 앞세워 헤쳐 나올 수 있었다.
반면 물리적 능력을 앞세우는 팀들은 고전했다. 동유럽권의 크로아티아와 폴란드, 세르비아몬테네그로가 조별 리그에서 짐을 쌌다.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도 실망스러운 기억만을 남긴 채 집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유럽식 축구’의 대변자 네덜란드 또한 이번만큼은 세대교체의 불안함 속에 다소 투박한 인상을 남기며 쓸쓸히 퇴장했다.
‘종가’ 잉글랜드는 8강에 오르기는 했으나 세밀함의 결여 속에 아직까지는 우승 후보다운 위용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잉글랜드는 웨인 루니의 마법이 터질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기대감 속에 8강전을 기다리게 될 터인데, 잉글랜드가 우승 고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루니와 조 콜의 섬세하고 역동적인 플레이가 동반돼야만 한다.
한편 힘과 조직력을 앞세우는 한 팀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못지않은 경기력을 구사하고 있으니 그 주인공은 개최국 독일이다. 2002년 세트플레이와 고공 플레이에 의존하며 ‘비판 속의 준우승’을 거머쥐었던 독일은 4년 전보다 훨씬 향상된 스피드와 조직력을 가미해 실속과 재미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축구로 변모했다. 필리프 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루카스 포돌스키, 다비트 오동코어 등 ‘젊은 피’들의 역동성이 주요 원동력이다. 독일인들은 오랜만에 소위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전차군단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중이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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