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렸던 ‘흑백사진’ 같은 포근한 정경. 그 누군들 그 모습이 아름답지 않을까.
더구나 그들의 대화 내용도 재밌다. 때로는 아슬아슬하고 때로는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은 허허 웃고 마는 아버지와 아들의 정겨운 모습.
10년간 308경기서 98골
20대들은 차두리의 솔직담백하고 당당한 태도에 박수를 보낸다. 40대 이상 중장년들은 그들의 젊은 시절 영웅이었던 차범근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
차두리는 구김살이 없다. 아버지 차범근의 2000년대 버전이다. 차범근은 “나에게 축구는 밀리면 끝장나는 전투였는데 아들 두리에게 축구는 행복하게 해주는 생활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 차범근은 70,80년대 대한민국의 영웅이었다. 지금의 박지성은 감히 차범근 옆에 갈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당시 차범근은 유럽의 지네딘 지단이었고 티에리 앙리였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런 그를 일주일에 한번씩 녹화 중계되는 분데스리가 경기를 통해 흑백 텔레비젼으로 겨우 볼 수 있었다. 만약 그 당시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실시간 중계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면….
당시 대한민국 사람들은 차붐 소식에 ‘타는 목마름’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가 마침내 2006독일월드컵에서 돌아온 차범근을 칼라 평면 텔레비젼으로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그 옆에는 젊었을 적 차범근을 빼다박은 아들 차두리도 있었다. 모두들 빙그레 웃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허허, 그 놈 참~”
열광적인 프랑크푸르트 축구 팬으로서 ‘아인트라흐트’, ‘축구 퀴즈’, ‘제프 헤르베르거와 보낸 한 때’, ‘축구 드라마’, ‘축구공이 웃는다’ 등의 축구 관련 책을 쓰기도 했다. 당연히 차붐에 관한 글도 있다. 단순한 글이 아니라 신이나 영웅을 찬양하는 독일 전통시 ‘찬가(Hymne)형식’을 빌어 1979년 ‘차범근 찬가(Hymne auf Bum Kun Cha·별표 참조)를 썼다. 가히 차범근을 신격화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간동아는 최근 어렵사리 독일현지에서 당시 헨샤이트의 1979년 작 ‘차범근 찬가’를 입수했다. A4용지 3.5매나 되는 장문의 찬가다. 내용 중엔 요즘 박지성을 가리키는 ’신형엔진‘이라는 표현도 눈에 띈다.
물론 여기서 신형엔진은 ‘차범근’이다. ‘(독일로의)귀화도 당신에겐 쓰라린 운명이 아니노라!’며 은근히 귀화를 종용하는 것도 흥미롭다. ‘푸스카스, 펠레의 후임자로 선택받은 자’라는 말도 차범근의 당시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구절이다.
‘동양인이지만 영혼은 독일인에 가깝고, 골문으로 돌진하는 힘이나 개인기, 빼어난 공간 확보능력도 독일인과 비슷하나니…’같은 구절은 독일인들의 축구에 대한 오만함을 느낄 수 있다.
‘차범근은 독일이 알고, 아시아는 알고, 세계는 알지만 (당시 쾰른에 있던 일본 스타)오쿠데라는 누가 알겠느냐’는 데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은근히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두번이나 UEFA컵 우승 이끌어
독일에서 차범근은 ‘갈색 폭격기’나 ‘차 붐’으로 불렸다. '붐(BUM)'은 독일어로 “쿵!” “쾅!” 이라는 뜻.
차범근은 79년 8월 독일 프랑크푸르트구단에 입단하자마자 펄펄 날았다. 세 번째 경기인 슈투트가르트 전에서 헤딩으로 첫 골을 넣더니 그 다음 네 번째, 다섯 번째 경기에서도 대포알 같은 슛으로 골 망을 흔들었다.
10년 동안 308경기 98골. 독일인들은 차범근을 볼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금세 푹 빠져버렸다. 그를 사랑했다. 아니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사랑은 가슴속에 숯불처럼 빨갛게 살아있다.
1981년 3월 UEFA 컵 결승 2차전 독일 프랑크푸르트-보루시아MG 경기.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의 오른쪽 윙포워드로 선발 출전했다. 보루시아 MG로선 두말할 것 없이 차범근이 경계대상 1호. 만약 그를 막을 수만 있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차가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오른쪽을 휘젓고 다니도록 놔두면 경기는 하나마나였다.
마테우스(45)가 전담마크맨으로 나섰다. 마테우스는 당시 떠오르는 ‘축구천재’. 무서울 것 없는 나이 스물. 차범근은 스물여덟. 하지만 차범근은 마테우스를 간단하게 제치고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1-0 승리로 프랑크푸르트 창단 첫 우승. 당시 UEFA컵 우승은 지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나 같았다. 2006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FC바르셀로나가 당시엔 프랑크푸르트였던 것이다.
마테우스는 “난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붐은 현재 세계 최고의 골잡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마테우스가 누군가. 그는 축구황제 베켄바우어를 잇는 독일축구의 줄기세포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20년에 걸쳐 ‘게르만의 혼’으로 불리며 월드컵에만 5번(25경기 출장)이나 나갔을 정도다.
한편 UEFA컵 우승 얼마 후 서독 월드컵대표팀 데르발 감독은 차범근에게 정중히 귀화를 제의 했다. 하지만 차범근은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이 단박에 거절했다. 그의 조국은 ‘대~한민국’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83년 차범근이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 됐을 때 프랑크푸르트 팬들은 엉엉 울었다. 하지만 레버쿠젠 팬들은 발을 구르며 그를 맞이했다.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해결사가 오신 것이다. 차범근은 레버쿠젠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차범근은 88년 UEFA컵 스페인 에스파뇰과의 결승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다. 2-3으로 끌려가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통쾌한 어퍼컷을 날린 것이다. 결국 레버쿠젠은 승부차기로 창단 첫 유럽 컵을 품에 안았다.
서독 언론들은 차범근을 저마다 ‘지구 최고의 축구선수’라고 칭송했다. 키커지는 ‘차붐, 팀 창단후 첫 UEFA컵 우승을 두 번이나 이끌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의 영웅이자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타’라고 말했다.
2006년 한국월드컵대표팀이 레버쿠젠의 바이이레나에서 훈련할 때 에른스트 퀴흘러 시장은 “차붐으로 인연을 맺은 이 도시에 한국대표팀이 훈련을 하게 돼 기쁘다. 차붐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레버쿠젠에서 무려 52골이나 터트렸다. 차붐의 홈구장에 온 태극전사들을 뜨겁게 환영한다” 며 기뻐했다.
그러나 차두리는 이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가 이번 시즌부터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마인츠 구단에 등 번호 2번을 달고, 오른쪽 윙백으로 뛰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차두리는 이제 그의 아버지처럼 골잡이가 아니다. 수비수 차두리로 거듭나려는 것이다. 그는 유럽 선수들과 부딪쳐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 병기’다. 스피드도 아버지에 못지않다. 하지만 세기가 모자란다. 드리블 능력이 떨어진다. 골잡이로서는 치명적이다. 결국 그는 결단을 내렸다.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있던 차범근. 만약 그 같은 골잡이가 현재 한국대표팀에 있었더라면 독일월드컵에서 이변의 주인공은 단연 한국이었을 것이다. ’불의 전차‘ 차범근. 이제 감독으로서 팬들의 가슴을 ’쿵 쾅‘거리게 해야 할 때다. 차붐, 제발 팬들을 감동 먹여다오.
다음은 ‘차범근 찬가’ 원문
독일어 원문을 한글로 번역중에 있습니다. 완역되는 대로 한글판 차범근 찬가를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부분 번역본은 3일부터 발매 중인 주간동아 543호에 실려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ymne auf Bum Kun Cha(1979)
Eckhard Henscheid
Schön ist, Mutter Natur, deiner Erfindung Pracht,
Die den großen Gedanken vermochte, den
Knaben zu träumen, zu denken - und dann auch zu
Bilden mit den schnellen, beseelten, jauchzenden
Füßen des Jünglings: Flink, flitzend,
Flirrend und flackernd - nicht lange fackelnd,
Doch feuernd und feiernd; den fühlenden Herzen
Frankfurts zur Freude.
Bum Kun Cha! Freund aus dem Osten! Fremdling bist
Du nicht länger - nicht bitt'res Los ist Exil
Dir! Heimat, die zweite, du fandst sie.
Wunderbar ist die Gunst denn des Gottes des
Fußballs. Zwar niemand weiß, wann und von wannen
Er schenket nach Puskas und Pele und Kempes den
Neuen Erwählten - nie doch und nimmer vergißt
Er sein hoffendes Volk. Über Indien hinaus
Und den Ganges spähet sein
forschender Blick, ins ferneste Land, da
Seit Alters Männermut blühet und hoher Sinn.
Tapf'res Korea! Du schenktest uns Cha!
Festlicher klinge mein Saitenspiel! Denn lang
Lieb ich dich, Cha, schon, drei Monde -
Drei Monde schon fällt dein verjüngendes
Licht auf die scheinbar gealterte Eintracht. Wir
Sahen dich erstmals, Lieblicher, gegen Stuttgart,
- und das Herz war bezaubert, verzaubert bald
Gar. Ach! Wie du da Förster, den Holzer,
Versetztest und Martin, den Rammler, so daß selbst
Sie dein Lob dann sangen - wie du dich
Schlängeltest durch die Abwehr - um endlich,
Endlich, kurz nach der Halbzeit, hoch in die
Lüfte dich reckend, die Flanke von Borchers
Nahmst mit der Stirn, der klugen, das
Leder versenktest im rechtesten Toreck - es war
Wie ein Herzkrampf, ein schöner, in Freude und
Ahnendem Jubel in eins.
Am Abendhimmel blühte ein Frühling auf, und
Sein Name war Cha. Die Eintracht aber, jahrlang
Von Klippe
Zu Klippe
Geworfen, glühte mit dir, o mein Trauter, zu
Neuschönem Glanze. Aus dem Schlaf des
Dornröschens erwachte die alte, die beinah
Vergeß'ne Primadonna sehr rasch. Vergessen das Alter
Grabowskis, vergessen der Streit mit dem Trainer.
O neues heilig' Herz der Mannschaft! Uns zur
Erhabenen Lust stürmst du, Schönster, so viel ich
Sah, seither, wie der Vogel des Waldes über die
Wipfel fliegt, schwingst du, Zierer, leichter und
Mühlos und sonder Gewalt dem Tore dich zu, dem
Beschützten - Östling unter Deutschen,
Und ihnen dennoch verwandt in der Seele,
Nah auch in Tordrang und Technik und
Teilung des Raumes in all seiner
Tiefe . . .
Kenntnisreicher Künstler am schwarweißen Balle!
Der Mann aus Korea allein hat die Präzision deines
Abspiels. Trocken schlägst du die Pässe, den
Kurzpaß sowie auch den raumgreifenden Vetter, den
Steilpaß. Nicht fremd ist dir der
Fallrückzieher, wir sahen's. Du zeigtest, daß
Auch in Asia, dem fernen, bekannt ist der Trick
Mit dem kunstreichen Haken - doch mehr noch
Erstaunen den Gegner die nicht-orthodoxen, die
Tricks, die im Lande noch unbekannt. Freilich,
Nie ähneln sie je doch der Tücke des Panthers,
Nie schielet Verschlagenheit Asiens durch -
Fair play ist Bum Kun Chas Religion!
Ach, abermals weiden die Augen auf dir! Hurtig
Treibst du das Leder nach links, kühner umkurvst
Du den grätschenden Stopper, zaubernden Fußes
Entläßt du den Lib'ro in Scham. Leichthin,
Euphorion erinnernd, vergleichbar auch durchaus
Der zarten Gazelle, dribbelst du torwärts und
Spannst doch den Fußnerv alljetzt schon zur Bombe -
Denn kaum hinkt die Macht deines Schusses der
Pracht nach Bernd Nickels, genannt "Dr. Hammer":
Dem du, so liest man, längst Brücken der
Freundschaft gebaut hast, auch menschlich . . .
Herzschöner Mann! Flutlichtumschwärmt auf den
Flügeln der Flanke, jetzt plötzlich der rechten,
Füllhorn der Technik, Fülle des Seins!
Samtschwarzen Seraphkopfs sehr schönen Scheins!
Seht nur den Doppelpaß jetzo mit Nachtweih und
"Holz"! Tripelpaß ewiger Klarheit!
Genius des Ostens! Sel'ges Korea!
Ein Flankengott jener Abramczik? Da lachen die
Gütter des alten Olymp! Sie lachen Schorsch
Volkerts und
Lächeln ob jenem, der, unrhythmisch seltsam,
Rummenigge sich nennt! Wer kennt Okudera? Cha
Aber - ob er nun "Cha Bum Kun" heißt, so wie die
"Frankfurter Rundschau" es will; oder doch
"Bum Kun Cha", wie die FAZ ihn besingt; oder
"Tscha Bum", wie "Bild" ihn begrüßte - dich,
Cha, kennt Deutschland, kennt Asien, die Welt so und so - - -
Ew'ges Korea!
Im Winde klirret die Fahne zum Eckstoß. Gefahrstufe
Eins. Anläuft Cha Bum, herrlich die Flank' in die
Fluten der Zeit! Schon steht Cha Bum wieder nah
Dem Elfmeter, lauert des Zuspiels, hilft
Hinten aus. Schneisen schlägt er in Spielfeldmitte,
Schleusen öffnet sein schneller Fuß: Sammelnd der
Gegenwart hohes Vergang'nes, einend die Künste
Grabowskis mit denen des Pfaff, Kressens gedenkend
Und eingedenk Sztanis. Fußball berückend - und
Rührend selbst Toni, den treuedlen Zeugwart, der
Dir, Cha, im Air-Bus von Braunschweig nach
Frankfurt die Wange gar küßte; so stand's in der "Rundschau" . . .
Geh' unter, HSV! Trunken dämmerte die
Seele selbst dir (3 : 2)!
Ja, in den Ozean all deiner Tricks will ich mich
Stürzen, Bum, sturztrunken einfallen laut in die
Chöre des Jubels, Sohn einer fußballträumenden
Mutter. Anbeten will ich - gleich dir, der du
Betest vor Spielbeginn und auch während des
Kampfs "ständig vertieft bist im Gebet", wie
Wieder die "Rundschau" weiß. Anbeten will ich,
Singen dein Lob all mein Lebtag und
Endlich, wenn's gut geht, warte nur balde,
Berückt in Verzückung unendlicher Schöne vergeh'n - - -
Nur, Bum, daß du, folgt man einem Bericht in
der FAZ, nach deiner Aktiven-Laufbahn Deutsche
Predigend zu Gott bekehren willst, das, Bum,
Muß ja wohl nicht sein.
독일어 원문을 한글로 번역중에 있습니다. 완역되는 대로 한글판 차범근 찬가를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부분 번역본은 3일부터 발매 중인 주간동아 543호에 실려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Quelle: Eckhard Henscheid: Ein scharmanter Bauer. Frankfurt 1980.
*출처: 에크하르트 헨샤이트: 『매력적인 농부』, 프랑크푸르트 1980.
에크하르트 헨샤이트는?
1941년 독일 오버팔쯔 암베르크 출생. 어렸을 적 꿈은 음악교사. 뮌헨대에서 독문학과 언론학을 공부. 한때 레겐스부르크에서 신문기자로 일함. 로버트 게른하르트 등과 “뉴 프랑크푸르트학파”를 결성하고 기관지 “타이타닉”을 출간. 현재 프랑크푸르트, 암베르크, 아로사(스위스) 등에 번갈아가며 거주. 1971년부터 작가로 활동. 그의 작품의 특징은 시, 소설, 희곡 뿐 아니라 수필, 풍자, 동화, 넌센스 문학, 문학비평, 음악비평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독일문학에서 가장 비중 있는 작가 중 하나로 평가받음. 괴테 전문가. 『괴테와 그의 여인들』, 『오해의 문화사』,『헬무트 콜 전기』 등 수십 편의 작품을 썼음. 열광적인 축구 팬. 축구관련 작품으로는 『아인트라흐트』, 『축구 퀴즈』, 『제프 헤르베르거와 보낸 한 때』, 『축구 드라마』, 『축구공이 웃는다』 등이 있다.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 mars@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