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속으로]일그러진 영웅 지단

  • 입력 2006년 7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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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프랑스)을 무너뜨린 것은 결국 나이가 아니라 자신의 성질이었다.

이탈리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를 ‘박치기’로 쓰러뜨린 지단이 2006 독일 월드컵 최우수선수로 뽑힌 것은 반칙이고 심하게 말하면 악(惡)이다.

지단이 왜 그런 반칙을 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지단의 박치기는 ‘거리의 싸움꾼’의 모습이었다. 그의 자녀뿐 아니라 전 세계 어린이들이 지켜봤다. 그들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폭력을 너그럽게 용서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FIFA는 2002년과 1998년에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결승전이 끝나기도 전에 최우수선수 투표가 이뤄졌고 그래서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 상을 탔다.

지단은 이 시대 가장 완벽한 축구선수였다. 1998 월드컵에서의 영광을 프랑스에 되찾아 주기 위해 대표팀으로 되돌아온 지단은 영광스러웠다. 그는 이번 대회의 ‘주인공’이었다.

프랑스는 조별리그에서 한국을 상대로 고전했지만 이후 지단은 스페인 브라질전에서 놀라운 기량으로 팀을 결승까지 올려놓았다.

이탈리아는 결코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지단이 있었다. 지단은 어깨 부상과 쌓인 피로를 딛고 자신을 불꽃처럼 태울 수 있었다. 하지만 마테라치와의 충돌 후 그는 자제심을 잃었고 폭발했다.

1998 월드컵 당시 지단은 사우디아라비아 선수가 ‘북아프리카 혈통’을 거론하며 조롱하자 가슴을 밟아버렸고 퇴장당했다. 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지로 폭력을 썼다. 오라시오 엘리손도 주심은 그를 쫓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월드컵 결승전 직전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들어설 때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의 멋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상 스포츠 최고의 순간. 전 세계 팬들은 주로 한 사람에 대해 얘기했다. 가장 위대하고 가장 겸손했던 지단의 마지막 경기. 지단이 그동안 보여 준 열망은 강렬했고 경험은 훌륭했으며 그의 축구는 탁월했다. 그러나 시간은 영웅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섬세하게 지켜보지 않고 꽉 막혀 있는 미궁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로 가득 찬 스포츠 세상에서 청중을 사로잡으려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관중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TV 해설자들도 이 결승전이 치러진 경기장이 얼마나 뜻 깊은 곳인지 알았는지 의문이다.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은 정치가 스포츠에 역사적 영향을 미친 곳이다. 1936년 아돌프 히틀러는 여기서 아리안족이 우월한 인종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제시 오언스라는 흑인이 육상에서 금메달 3개를 따는 것을 봐야했다. 한국의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우승했지만 일장기와 일본 국가 속에서 ‘손 기타이’라는 이름으로 금메달을 받았다.

프랑스의 보수정치인 장마리 르펜은 항상 선수들의 혈통 때문에 프랑스 대표팀을 반대해 왔다. 백인인 지단조차도 알제리 출신이라는 이유로 모욕을 당했다.

슬프게도 우리의 낭만은 상처 입었고 위대한 선수는 스포츠를 배반했다. 부끄러운 영웅의 모습이었다.

랍 휴스 잉글랜드 칼럼니스트 ROBHU800@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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