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안정감, 그리고 편안한 미소. 이승엽(30·요미우리)에게선 2003년까지 몸담았던 한국 프로야구 삼성 시절의 느낌이 났다. 팀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한신과 요미우리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던 18일 오사카 고시엔구장. 이틀 연속 내린 폭우로 경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이승엽과 차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19일 한신과의 경기를 끝으로 전반기를 마감하는 이승엽은 실내 연습장에서 간단히 타격과 수비 훈련을 한 뒤 인터뷰에 응했다.
○최고의 남자, 하라 감독
18일 현재 이승엽의 성적은 타율 0.326에 29홈런, 64타점을 기록 중이다. 득점은 70점, 안타는 109개를 쳤다. 요미우리 4번 타자라는 타이틀에 어울릴 만한 호성적.
그러나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승엽도 없었을 것이다. 이승엽은 “하라 감독은 한마디로 최고예요. 감독으로 인간으로 정말 좋은 분이에요. 10연패를 하는 동안 한 번도 선수들에게 화를 안 냈을 정도로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이승엽은 “5월 한때 부진에 빠져 의기소침해 있는데 하라 감독이 저를 불렀어요. 갔더니 ‘요리우리 4번 타자답게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다녀라. 삼진을 먹고 들어올 때도 고개를 숙이지 마라. 4번 타자가 풀 죽어 있으면 다른 선수들도 제 플레이를 못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잘 못할 때도 한 번도 바꾸지 않았고, 바꾼다는 소리도 없었어요. 그래서 쉽게 안정을 찾은 것 같아요. 하라 감독은 평소 ‘승짱(이승엽의 애칭), 오늘은 삼진은 2개까지 먹어도 돼’라며 농담도 자주 하세요.”
○요미우리는 가족 같은 팀
일본 스포츠전문지 ‘스포츠호치’에서 이승엽을 전담하는 기타노 아라타 기자는 이승엽의 성공 비결에 대해 ‘팀원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것’을 꼽았다.
때마침 인터뷰를 하던 이승엽을 본 주전 포수 아베 신노스케가 미소와 함께 한국말로 “이 상, 뭐하세요”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이승엽은 “요미우리가 워낙 스타 군단이다 보니 쓸데없는 오해도 많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안 그래요. 작년 롯데 시절에는 주로 김성근 코치님이나 친한 코치들과 밖에서 식사를 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휴식일이면 같이 밥을 먹자는 선수가 너무 많아요. 비로 취소된 어제(17일)도 선수들이랑 함께 어울렸어요”라고 했다.
○요미우리 잔류냐 메이저리그 진출이냐
워낙 팀 안팎에서 인정을 받다 보니 요즘 이승엽을 둘러싼 최고 관심사는 단연 시즌 후의 진로다. 이에 대해 이승엽은 “반반이에요. 당연히 내 꿈은 메이저리거예요. 그런데 요미우리도 워낙 좋은 팀이에요. 여기서는 내가 하고 싶은 야구를 해요. 시즌이 끝난 뒤 어떤 것이 과연 나를 위하는 것일까를 두고 정말 심각하게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벌써 말하기는 이르지만 과연 미국에서 나를 얼마나 원하는지, 내가 그 팀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후배들이여, 해외로 나가라
이승엽이 거둔 일본에서의 성공은 현재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박명환(두산) 손민한(롯데) 배영수(삼성) 등 많은 선후배가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 진출을 노리고 있다. 선수들의 해외 진출에 대한 이승엽의 생각은 어떨까.
이승엽은 “기회만 있다면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실패하면 명성에 흠이 될 순 있죠. 그래도 배우는 게 너무 많아요. 나중에 감독이나 코치를 하든, 아니면 사업을 하든 상관없이 굉장히 도움이 될 거예요. 조금 건방지게 말하면 주변에서 ‘얘는 가도 된다, 또는 안 된다’ 하는 말들은 좀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일단 부닥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가족은 나의 힘
힘들고 외로운 외국에서의 선수 생활.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이승엽은 외롭지 않다. 이승엽은 “아내(이송정 씨)와 조금 있으면 돌이 되는 아들(은혁 군)이 너무 고마워요. 요즘 은혁이는 내가 안으면 푹 안겨요. 그리고 한번 안기면 절대 안 떨어지려고 해요. 얼마나 귀여운지 내가 그냥 껌뻑 죽어요.”
이승엽은 “후반기에는 팀도 좋아질 거예요. 선두 주니치와 10경기가 넘게 차이가 나지만 아직도 목표는 우승이에요. 9연패, 10연패를 했지만 9연승, 10연승도 할 수 있는 게 야구니까요”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오사카=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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