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호… 401호… 승엽, 무더위 날리다

  • 입력 2006년 8월 2일 03시 00분


“잘했어” 이승엽(가운데 33번)이 9회 말 2사후 끝내기 투런 홈런을 날리고 홈 플레이트를 밟는 순간 동료들이 일제히 달려들며 환호하고 있다. 박빙의 승부 속에 가슴을 졸이던 터라 동료들의 환호는 그만큼 뜨거웠다. 1회 선제 2점홈런을 한일 프로야구 통산 400홈런으로 장식한 이승엽은 끝내기 홈런까지 날리며 1인극을 펼쳤다. 도쿄=연합뉴스
“잘했어” 이승엽(가운데 33번)이 9회 말 2사후 끝내기 투런 홈런을 날리고 홈 플레이트를 밟는 순간 동료들이 일제히 달려들며 환호하고 있다. 박빙의 승부 속에 가슴을 졸이던 터라 동료들의 환호는 그만큼 뜨거웠다. 1회 선제 2점홈런을 한일 프로야구 통산 400홈런으로 장식한 이승엽은 끝내기 홈런까지 날리며 1인극을 펼쳤다. 도쿄=연합뉴스
대기록의 희생양이 될 것을 예감했던 것일까.

한신 선발 투수 이가와 게이(27)의 얼굴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요미우리의 1회말 공격. 3루에는 선두 타자 야노 겐지가 나가 있었고 2사 후 타석에는 이승엽(30)이 서 있었다. 초구 헛스윙, 2구 파울로 불리한 볼 카운트에 몰렸지만 이승엽은 이가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볼, 파울, 볼, 볼, 파울. 2스트라이크 3볼에서 8구째를 던지려던 이가와는 마운드에서 발을 빼고 얼굴의 땀을 훔쳤다.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던진 직구(143km)는 한가운데로 몰렸고 이승엽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홈팬들의 함성 속에 뻗어 나간 타구는 왼쪽 담장을 훌쩍 넘었다. 또 하나의 야구 역사가 쓰이는 순간이었다.

기다리던 이승엽의 한일 통산 400호 홈런이 터졌다. 내친걸음이었던지 401호 끝내기 홈런도 함께 나왔다.

이승엽은 1일 도쿄돔에서 열린 한신과의 경기에서 1회 선제 2점 홈런을 때려 시즌 32호이자 통산 400홈런을 기록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며 324개의 홈런을 친 뒤 2004년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 76개를 보탰다.

경북고를 졸업하고 1995년 삼성에 입단하며 프로에 데뷔한 이승엽은 그해 5월 2일 광주에서 해태(현 KIA) 이강철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쏘아 올리며 홈런 레이스 첫발을 내딛은 뒤 약 11년 2개월만에 값진 성과를 얻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40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41명밖에 안 된다. 일본에서는 13명뿐이다.

이날의 홈런 드라마는 400호가 끝이 아니었다. 2-2로 맞선 9회 2사 1루에서 이승엽이 타석에 등장했다. 마운드에는 여전히 이가와가 서 있었다.

이가와는 이승엽에게 맞은 홈런을 제외하고 단 2개의 안타만 허용하며 호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가와는 이날 비극의 주인공이 될 운명이었다. 볼 카운트 1스트라이크 3볼에서 던진 직구(145km)는 이승엽의 방망이에 맞고 가운데 담장을 넘어갔다.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시즌 33호이자 통산 401호를 장식한 것이다.

요미우리가 얻은 4점은 모두 이승엽의 손끝에서 나왔다.

요미우리의 라이벌 한신으로서는 4월 21일 연장 11회에 이승엽에게 얻어맞은 끝내기 투런 홈런의 악몽이 떠올랐을 법했다.

이승엽의 화려한 원맨쇼 덕분에 요미우리는 4-2로 이기고 3연패에서 탈출했다. 4타수 2안타 4타점 2득점을 올린 이승엽의 타율은 0.331이 됐고 75득점(1위)을 기록했다. 70타점(4위) 고지도 함께 밟았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볼… 파울… 볼… 직구를 기다렸다”▼

이승엽은 최근 홈런을 치고도 얼굴이 밝지 않았다. 소속 팀인 요미우리가 극도로 부진했기 때문.

1회 선제 투런 홈런으로 한일 통산 400호 홈런을 기록한 직후 이승엽은 요미우리 홈페이지를 통해 “직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스윙을 믿고 마음껏 휘둘렀다. 400홈런을 달성했지만 아직 경기 중이기 때문에 기분에 휩쓸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개인 기록보다 팀을 앞세웠다. 그러면서 “400홈런을 달성하는 데 신세를 졌던 많은 분들, 하라 감독님, 코칭스태프, 프런트에 정말 감사드리고 싶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요미우리의 승리로 경기가 끝난 뒤 히어로 인터뷰는 당연히 이승엽의 몫이었다. 밝은 얼굴로 단상에 오른 이승엽은 “400홈런을 달성해 너무 기쁘다. “아들(은혁) 생일이 12일인데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특히 “이번 끝내기 홈런이 팀 동료들이 다시 한번 시작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해 팀의 분발을 촉구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줬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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