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불안감 앞서는 엄효석의 삼성행

  • 입력 2006년 8월 4일 03시 02분


‘제2의 황영조’로 평가받는 엄효석(22·건국대)이 최근 삼성전자 육상단에 입단하기로 결정했다. 실업 라이벌 코오롱과 신생 대우자동차판매㈜ 등과의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에서 삼성전자가 ‘대어’를 잡은 것이다. 엄효석은 고교생 시절 랭킹 1위로 전국대회 중장거리를 휩쓴 유망주. ‘마라톤 사관학교’ 건국대에선 황규훈(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이사) 감독의 지도를 받아 쓸 만한 재목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많은 육상인은 엄효석의 삼성전자행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유망주들이 삼성전자로 많이 갔지만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체대 재학 시절인 2000년 동아서울국제마라톤에서 우승한 정남균(26)이 대표적인 예. 정남균은 삼성전자 유니폼을 입은 뒤 장기간의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2004년 아예 마라톤을 그만뒀다. 충북체고 재학 시절 고교 랭킹 1위로 전국대회를 휘어잡았던 허장규(23)는 팀 숙소를 몇 차례 이탈하는 등 방황하다 최근에야 마음을 잡고 제대로 훈련하고 있다.

2004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국내 여자마라톤 역대 2위 기록(2시간 26분 17초)으로 우승한 이은정(25)도 충남도청에서 스카우트해 왔지만 현재 원인 모를 슬럼프에 빠져 있다.

한 육상인은 “삼성전자가 너무 성적에 집착해 서두르다 보니 선수들을 망가뜨린다”고 말했다. 세계무대에서 꾸준한 성적을 내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6·삼성전자)와 같은 선수로 너무 빨리 키우려다 보니 역효과가 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훌륭한 마라톤 선수를 키우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2000년 마라톤 저변 확대를 위해 팀을 창단한 삼성전자 육상단. 국내 최고 기업 소속의 팀을 넘어 ‘마라톤 명문’이 되기 위해선 과거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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