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씨름의 시름이 깊다. 한국씨름연맹은 2006 제천장사대회 기간에 천하장사 출신 간판스타 이태현(30)이 일본 이종격투기 진출을 선언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연맹은 대회 도중 이태현의 은퇴식을 치러 주려고 했으나 그는 7일 은퇴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씨름판을 떠나는 그의 심정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최홍만(26) 등 천하장사 출신들이 이처럼 앞 다퉈 족보에도 없는 격투기 선수로 변신하고 있는 것은 씨름의 인기 하락이 주 원인이다.
대기업들은 잇달아 팀을 해체했고 평생 씨름 하나만을 바라보고 운동해 온 선수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씨름연맹도 위기를 맞고 있다. 주 수입원이었던 중계권료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KBS는 해마다 12억 원가량을 지급했으나 지난해부터는 중계를 줄이고 중계권료도 이전처럼 주지 못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올해 역시 협상이 진행 중이어서 연맹은 KBS로부터 중계권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소년체전에서 씨름을 제외하자는 의견이 있었을 정도로 스포츠계에서의 위상도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오늘날의 위기는 씨름인들이 자초했다는 평가다. 1980년대만 해도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으나 마케팅 및 경기 내용 개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씨름계는 소위 재야파와 연맹 측으로 나뉘어 여전히 내분에 휩싸인 채 서로 헐뜯기 바쁘다. 아마씨름계도 회장 인선을 둘러싸고 바람 잘 날이 없다. 위기 속에서도 뼈를 깎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더는 민족 고유의 운동이라는 프리미엄만 가지고는 냉정한 스포츠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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