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뒤 전남 코치진은 망덕포구의 단골 횟집을 찾았다. 허 감독의 부인 최미나(52) 씨를 비롯해 코치진 부인들도 함께했다. 허 감독에게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 지도자의 의미
백 번의 승리 중 어떤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을까.
“다 소중해서 딱 꼬집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절대 못 잊는 패배는 있죠. 1995년 챔피언결승전에서 3차전까지 갔는데 성남에 졌어요. 우승을 눈앞에 놓친 것이 지금도 가슴 아파요.”
그는 K리그를 발전시키려면 불합리한 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드래프트제도로는 유소년을 육성하는 팀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돼 있어요. 애써 키워 놓은 선수에 대한 우선권이 없으니 누가 선수를 키우겠어요.”
허 감독은 1998∼2000년 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그는 국내 언론과 팬들이 아직 국내 감독을 못 믿는 것이 씁쓸하다고 했다. 그래도 자신이 발굴한 선수의 성장은 커다란 보람.
“박지성을 올림픽 대표로 처음 뽑았을 때 언론에서 난리가 났어요. 명지대 감독하고 친해서 데리고 왔느니 하면서요. 그때 ‘1년 후에 말해 달라’고 했어요. 나중에 아무도 말을 못하더라고요.”
최근 맹활약하고 있는 설기현은 어떨까. 허 감독의 대답은 의외로 냉정했다.
“아직 멀었어요. 좀 더 독한 각오로 뛰어야 해요.”
안타까운 선수도 있다.
“고종수가 가장 아까워요. 자극을 주기 위해 올림픽대표팀에서 고종수를 뺐는데 언론에서 ‘왜 천재를 빼느냐’며 난리가 났어요. 그 뒤로 고종수가 잘됐으면 좋았을 텐데….”
○ 배려의 의미
다음 날 오전 허 감독 부부를 다시 만났다. ‘스포츠스타-연예인 커플 1호’라는 이 부부는 소문난 ‘닭살 커플’. 최 씨는 사업으로 바쁘지만 어떻게든 짬을 내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한다.
“감독님이 경기장에 들어서면서 뒤를 힐끔 돌아보세요. 가족이 응원하지 않으면 영 허전한가 봐요.” 허 감독은 축구계 선후배 간에 무척 인기가 좋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어서일 것이다. 그가 최근 코치진에 권한 책도 ‘배려’다. 유능하지만 자기밖에 몰랐던 한 신입사원이 배려를 배워 나가며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책.
그의 인생 얘기를 듣는 동안도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응응. 고마워. 요즘 고생하지? 광양에 한번 내려와서 소주 한잔해야지.”
홍명보 대표팀 코치의 축하 전화였다.
광양=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허정무 감독은…
생년월일: 1955년 1월 13일 출생지: 전남 진도 학력: 영등포공고-연세대 체육교육과 경력: 1973∼74년 청소년대표, 1974∼86년 국가대표,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 및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금메달, 1980∼83년 PSV에인트호번(네덜란드), 1984∼86년 현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트레이너) 1994년 미국 월드컵(코치), 1991∼92년 포항 스틸러스 코치, 1993∼95년 포항 스틸러스 감독, 1996∼98년 전남 드래곤즈 감독, 1998∼2000년 국가대표팀 감독(시드니 올림픽 출전), 2005∼ 전남 드래곤즈 감독 수상: 체육훈장 백마장(1979년), 거상장(1986년) 외 국내 대회 수상 다수, 프로리그 베스트일레븐 및 감독상 수상 취미: 바둑(컴퓨터 아마 4단) 장기 당구 골프 종교: 기독교 가족: 부인 최미나(52) 씨, 장녀 화란(25) 차녀 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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