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한국 유소년축구 발전 세미나 제도개선 분임토론회장. 토론자로 참석한 한 학부모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전국대회를 없애고 주말리그제로 바꾸자’는 주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다. “현 체제 속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좋다”는 주장. 이유는 고교 1학년인 아들이 체육 특기자로 대학에 가기 위해선 전국대회 4강, 8강에 들어야 하기 때문. 그는 “이젠 솔직히 공부를 시킬 나이도 지나 어차피 축구로 대학에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축구협회는 ‘공부하는 축구선수’를 만들기 위해 수업을 빼먹고 1, 2주씩 벌이는 전국대회를 폐지하고 주말에만 경기를 치르는 주말리그제를 전면 실시할 계획. 이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너무 달랐다. 참석한 한 고교 지도자는 “주말리그제로 가는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전국대회도 존속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선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실적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패널이 “왜 꼭 축구를 통해서 대학을 가야 하느냐.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자 “배운 게 축구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맞받았다. 그는 “대학에서 4강, 8강 증명서를 원하는데 리그제 가지고 되겠느냐”고 주장했다.
이들에겐 오직 축구가 대학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광복 이후 60년 넘게 스포츠가 학교 체육에 의존해 왔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현상이다. 축구를 교육의 수단으로 이용해야 할 학교가 선수들을 ‘축구 기계’로 만들어 내는 게 국내 현실. 지역별 클럽을 통해 축구를 놀이로 즐기다 재능이 보이는 아이들을 엘리트 선수로 육성하는 선진국과는 너무 다른 시스템이다.
리그제 도입에 대한 합의는 봤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리그제 도입보다 학교 축구의 존재 목적이 엘리트 육성이 아니라 교육에 있다는 사고 전환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축구=교육’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없다면 ‘축구 기계’는 나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실 축구뿐만이 아닌 모든 종목이 마찬가지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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