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길은 없었다. 누군가 맨 처음 앞서 가면, 그 발자취가 바로 길이 됐을 뿐이다. 바위에도 길이 있다. 바윗길이다. 수많은 사람이 그 길을 따라 바위 등짝에 오른다. 한 땀 한 땀 자벌레처럼 ‘몸을 접었다 폈다’ 하며 바위를 탄다. 한번 오르면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다. 밑은 까마득한 천 길 낭떠러지. 바위꾼들의 몸은 그대로 ‘인간잣대’다. 몸으로 생각하고, 육신으로 한 고비를 넘는다. 그렇게 또 한 세상을 오른다.
북한산 인수봉(810.5m)엔 바윗길이 60여 개 있다. 도봉산 선인봉(708m)엔 40여 개의 루트가 있다. 미국 요세미티 계곡의 거대한 화강암 절벽 엘캐피탄(2695m)엔 1000개가 넘는 길이 있다. 엘캐피탄은 수직 바위만 1086m. 거기에도 어김없이 실낱같은 길이 숨어 있다. 모든 길은 옳다. 그 길을 오르는 사람도 모두 옳다.
주부 클라이머 허화자(54) 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바위를 탄다. 전국 곳곳의 바위란 바위는 안 가본 곳이 없다. 경력 13년. 집에서도 쉬지 않고 힘을 기른다. 아령 철봉 등은 기본이고 팔굽혀펴기 50개 정도는 금세 할 수 있다. 체력 나이로는 30대 초반. 이제 막내가 스물다섯이니 아이들(1남 2녀)도 다 키웠다. 남편은 2층만 올라가도 벌벌 떨 정도로 높은 곳은 딱 질색. 하지만 부인 허 씨의 열렬한 후원자다. 허 씨가 며칠 집에서 ‘방콕’이라도 할라치면 “어디 아파? 바위 타러 안가?”라며 슬며시 등을 떠민다. 허 씨는 “며칠만 산에 가지 못하면 우울증이 생길 것 같아요.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바위를 타게 되면 정말 황홀하고 행복합니다. 남편도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송종선(47) 씨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그는 바위꾼 모임인 적벽산악회(cafe.daum.net/kaj5) 대장이다. 등록 회원만도 3000여 명. 거의 매일 회원들과 바위에 오른다. 평일엔 6, 7명, 휴일엔 10여 명의 회원과 함께 한다. 그는 늘 앞장서 바윗길을 열어 회원들을 이끈다. 몸동작이 가볍고 발끝이 거미처럼 쩍쩍 바위에 달라붙는다. 마치 발레하는 것처럼 경쾌하다. 바위는 손이 아니라 발로 오르는 것. 그는 “매일 오르고 또 올라도 재밌고 즐겁습니다. 바위는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합니다. 같은 바위라도 언제나 새롭지요”라고 말한다.
성지 인수봉… “줄을 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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