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야생마, 골프 황제 꺾다…세계77위 양용은, HSBC 우승

  • 입력 2006년 11월 13일 03시 07분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었다. 물론 마땅한 일자리도 없었다. 공사판과 밤무대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재워 주고 먹여 준다는 말에 시작한 게 바로 골프연습장 일이었다. 우연히 인연을 맺은 골프로 꼭 성공하고 싶었다. 연습장에서 찬밥에 물을 말아 먹는 어려움을 딛고 마침내 평생 잊지 못할 환희의 순간을 맞았다.

프로골퍼 양용은(34·게이지디자인).

그는 12일 중국 상하이(上海) 서산인터내셔널GC에서 끝난 유럽프로골프투어 겸 아시아프로골프투어인 HSBC챔피언스에서 우승한 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축하를 받았다.

“우즈가 시상식 때 제 옆에 앉았습니다. ‘정말 잘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날이 또 올까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양용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럴 만도 하겠다. 세계 77위에 불과한 양용은은 이 대회에서 1위 우즈, 2위 짐 퓨릭(미국), 28위 최경주 등 스타들을 모두 제치고 정상에 섰다.

오늘은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지만 양용은의 지난날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야생마’가 별명인 그는 말로 유명한 제주에서 태어났다. 제주관광산업고 2학년 때까지 보디빌딩을 한 뒤 고교를 마치고 어려운 집안 형편에 직업을 찾았다. 굴착기 기사를 하기 위해 건설현장을 찾았고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도 했다.

19세 때인 1991년 숙식이 가능하다는 친구의 소개로 골프연습장에서 골프공을 줍고 뒤치다꺼리를 하며 골프를 스스로 익혔다.

5년 동안 비디오와 골프 서적으로 독학을 한 끝에 1996년 8월 프로가 됐으나 여전히 무명이었다. 변변한 스폰서가 없었고 유일한 수입인 상금이 한 해에 1200만 원도 안 됐다. 사는 곳은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의 셋집이었다.

“집사람에게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갖다 준 적이 많아요.”

그런 양용은이 올해에만 상금으로 994만1563달러(약 94억 원)를 벌어들인 ‘억만장자’ 우즈를 꺾고 그에게서 축하까지 받았으니….

생계에 도움 되는 레슨 프로 대신 ‘투어 프로’를 고집한 양용은은 2002년 SBS최강전에서 프로 데뷔 6년 만에 첫 승을 거뒀다.

이후 해외 무대로 눈을 돌린 양용은은 2004년 일본투어(JGTO)에 데뷔해 첫 해 2승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프로 입문 10년을 맞은 올해엔 최고 시즌을 맞았다. JGTO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한 그는 9월 국내 메이저대회인 한국오픈에서 우승했다.

샷 감각이 나쁘면 하루에 12시간 넘게 공을 때리는 ‘연습 벌레’로 유명하다. 부인 박영주(32) 씨와 아들 3명을 뒀다.

이제 양용은의 눈은 ‘꿈의 무대’라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향하고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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