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은 물론이고 때로는 90도를 넘어 거꾸로 매달려야 하는 ‘오버행’이 있는 인공암벽을 장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손과 발로 누가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는가를 겨루는 신종 스포츠, 스포츠클라이밍.
지난달 15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 인공암장에서 열린 노스페이스배 스포츠클라이밍대회에서 앳된 얼굴과 작은 체구의 초등학교 여학생 2명이 일반부에 출전해서 이모뻘 선수들과 당당히 겨뤄 관중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주인공은 열두 살 동갑내기로 초등학교 6학년인 사솔(충북 청원남일초)과 이예림(경기 광명초).
사솔과 이예림은 이날 여자 일반부 예선 참가자 18명 중 각각 7위와 8위에 올라 10명이 겨루는 결승전에 당당히 진출했고 결승전에선 사솔이 9위, 이예림이 10위를 차지했다.
전국체전 우승 주거니 받거니… 우린 라이벌이자 친구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이재용(35) 감독은 이 두 꼬마 선수를 보고 “강인한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어린 선수들이 결승전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 얼마 뒤 이 ‘스파이더 걸’들에게 연락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했다. 아이들 입에서
TV 화면을 장악하고 있는 연예인 이름이 튀어나오면 그 연예인과 함께 사진 찍을 자리라도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 머릿속에 스포츠클라이밍 말고 다른 것이 차지할 공간은 없나 보다. 약속이나 한 듯이 둘 다 “자인이 언니요!”라고 외쳤다.
김자인(18·일산동고 3년·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은 아시아에서 스포츠클라이밍 여자부 지존. 2004년 전남 영암군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1위에 오른 뒤 2005년 이란 대회와 올해 10월 26일 대만 가오슝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우승해 3연패를 달성했다. 김자인은 올해 체육특기자로 고려대 입학허가를 받아 내년엔 어엿한 여대생이 된다. 후배 선수들이 자신을 꼭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하자 김자인은 “귀여운 녀석들∼”이라며 흔쾌히 응했다.
이들이 만난 곳은 경기 광명시 하안동에 위치한 광명 인공암장.
“얘들아∼.” “언니!”
반갑게 포옹을 마친 뒤 이들은 마치 거미 자매들처럼 인공암벽에 붙어 “이쪽 홀드(인공 손잡이)에서 저기로 가려면 어떻게 하는 게 제일 좋을까?” 등등 끊임없이 재잘거린다. 한 시간여 동안 연습 겸 수다를 떤 김자인에게 사솔과 이예림의 장단점에 대해 물어봤다. 아이들도 옆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매일 4~5시간 맹훈련… 주말엔 진짜 암벽도 타지요
“음∼. 솔이는요, 무척 열심히 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점이 좋아요.
단점이라면 루트 공략이 적극적이지 못한 거예요.
예림이는 욕심이 참 많은데 이게 장점이면서 단점이죠.”
올해 전국체전에선 이예림이 여자 초등부를 석권했고, 지난해에는 사솔이 1등을 하는 등 둘은 경쟁관계지만 대회에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정보를 교환하며 우정을 나누는 사이.
사솔은 한국등산학교를 졸업한 암벽등반 마니아인 아버지의 권유로 오빠 랑(14)과 함께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했고, 아이들과 동시에 스포츠클라이밍을 배운 어머니 박정아(41) 씨도 지난해 청풍대회에 출전해 2위 입상을 했다. 솔이네 식구들은 매일 오후 6시부터 10시 30분까지 하루 4시간 반 동안 함께 인공암벽에 매달려 땀을 흘린다.
주말엔 자연암벽 등반이 일과다. 며칠 전에는 강원 원주시에 있는 간현암에 다녀왔단다. 반면에 이예림은 독학파다. 입문은 암벽등반에 관심이 많은 이모부 김덕회(51) 씨의 손에 이끌려 했지만 체계적인 지도를 받아 본 적이 없다. 광명 인공암장에서 매일 4∼5시간 훈련을 하는데 ‘귀엽다’고 암장 사용료를 면제받았다. “아저씨들이 어떻게 하나 잘 보고 있다가 나도 한 번씩 해 보면 (실력이) 늘더라고요.”
아버지 이충대(43) 씨는 “예림이가 밝고 또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한마디로 우리 집 보물이에요”라고 했다.
이예림은 지난해 6월 연습하다 3m 높이에서 떨어져 오른쪽 발목인대가 늘어나 1년 가까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예림은 “제가 쉬는 동안에 친구들은 (실력이) 무척 많이 늘었더라고요.
많이 속상했죠”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이예림은 “전국체전에서 1등 먹으니까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해서 좋아요”라며 방긋 웃었다.
전 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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