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순간이라도 이들처럼 뜨겁게 살아본 적이 있는가.’(breeze8686)
한국 최초의 스포츠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을 본 관객들의 댓글이다. 누리꾼이 직접 매기는 네이버 평균 평점은 10점 만점에 9.58점이었다. 올해의 개봉 영화 중 최고 평점이다.
매번 지기만 하는 프로축구 시민구단 인천 유나이티드가 리그 통합 1위,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이룬 실화를 2년간 밀착 취재해 만든 이 영화는 14일 개봉해 9개 상영관에서 1만여 명의 관중을 모았다. 다큐멘터리 영화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 좌석 점유율도 70%로 입소문을 타고 관객도 늘고 있다.
그러나 ‘비상’은 개봉 1주일 만에 상영관이 줄어드는 위기에 빠졌다. 대규모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저예산 영화에 자리를 내주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3개 스크린이 이번 주 영화를 내렸다.
‘비상’을 연출한 임유철 감독은 20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무척 힘들어 보였다. 임 감독은 “빚더미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개봉관 상영은 계속돼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비상’의 전체 예산은 4억5000만 원. 제작비 2억5000만 원에 개봉 준비, 마케팅 비용을 전부 더한 돈이다. TV 광고는 엄두도 못 냈고 신문 광고도 못했다. 임 감독은 개인 빚을 내야 했고 스태프들은 인건비의 반도 아직 못 받았다.
많은 지방 극장이 상영을 원했음에도 영화를 못 걸었던 것은 디지털시스템으로 제작했기 때문. 디지털 상영이 불가능한 일반 극장을 위해 필름 제작비용 8000여만 원도 영세한 제작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었다.
영화를 본 많은 관객도 ‘이 영화는 1000만 명이 봐야 한다’, ‘왜 이 영화를 홍보 안 해요’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1000만 관객의 블록버스터가 속출하는 한국 영화 시장은 이제 제작비 50억 원은 돼야 명함을 내미는 거대한 시장이다.
“서점에 장사가 잘 된다고 참고서만 있고 소설, 시집은 다 내팽개친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까요. 영화계에도 다양성이 꽃을 피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임 감독의 하소연이 무척 외롭게 들렸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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