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수염이 멋있는 한 사나이가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가 썼다는 커다란 월도(月刀)를 빙빙 돌리면서 말을 몰아 달려오더니 세워 둔 볏단을 순식간에 베어 버린다.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며 휘두르는 월도가 햇빛에 반사돼 번쩍거리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 시골 초등생 때 처음 본 이상한 동물
말 위에서 칼이나 창, 도리깨, 활 등의 무기를 다루는 마상무예를 고성규(46) 씨는 9년째 연마하고 있다. 17일 경기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승마장 ‘마구간’에서 만난 고 씨는 체격은 작지만 살아 있는 눈빛과 사극에서나 봄 직한 턱수염 때문인지 무척 강인해 보였다.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도중 낙마로 유명을 달리한 고 김형칠 선수를 떠올리며 마상무예가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어 봤다.
“이거 정말 목숨 걸고 하는 겁니다. 날이 서 있는 칼과 함께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고도로 숙련되지 않으면 절대 흉내 내선 안 되지요.”
첩첩산중인 강원 영월군에서 태어난 고 씨는 초등학생 때 조부의 제사를 지내러 충북 제천에 가서 난생 처음 말을 봤다. 벽돌을 나르던 녀석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말이 아니라 수탕나귀와 암말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였다. 하여간 처음 본 신기한 짐승에게 빠져 하루 종일 쫓아다니다가 마부에게 혼쭐이 났다. 이때 고 씨는 커서 꼭 말을 타겠다고 결심했다. 이 꿈을 1993년이 돼서야 실현했다. 신문에서 승마 기사를 읽고 무작정 경기 구리, 파주, 용인시와 고양시 일산구 등 수도권에 있는 승마장을 다니며 말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 2마리로 시작한 말, 이젠 모두 20필
1998년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TV 사극 ‘용의 눈물’을 보면서 고 씨는 한 가지 의심이 들었다. 말이 드라마의 여러 장면에 등장하는데 재래종인 조랑말이 아니라 서양말이라는 점이 눈에 거슬렸다.
백방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마상무예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부터 조선 정조 14년(1790년) 규장각에서 간행한 ‘무예도보통지’의 그림을 본 뒤 말을 타고 연습을 해 봤다. 그 결과 기마민족인 우리 조상이 전투를 치를 때 탄 말은 재래종인 조랑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을 태우고서 과일나무 가지 밑으로 지나갈 수 있다는 뜻으로 과하마(果下馬)로도 불리는 조랑말은 발굽이 단단하고 힘이 장사라 7, 8시간은 너끈히 구보할 수 있고 산도 잘 오른다.
고 씨는 2003년 경기 장흥 젖소목장을 임차해 아예 승마장을 만들었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말은 호주산, 독일산, 러시아산과 조랑말 등 20필이나 된다.
승마장을 만들게 된 계기는 2002년 대학생들과 함께 말을 타고 제주도에서 판문점까지 국토 종단을 하게 되면서부터. 고 씨는 대한청년기마대를 만들어 전국 일주를 하겠다는 대학생들을 처음엔 지도하다가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대장을 맡아 그해 8월 1일부터 광복절까지 보름 동안 국도로 700km를 달렸다. 국토 종단을 끝낸 뒤 말 2필을 1000만 원 주고 구입한 것이 지금은 20필까지 규모가 커졌다.
그의 희망은 제대로 된 마상무예를 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널리 알리는 것. 마상무예 시범을 20여 차례나 해 온 고 씨는 “우리 민족이 기마민족이라는 것을 알려 줄 훌륭한 문화 콘텐츠다. 제대로 된 공연장만 있으면 좋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인터넷 홈페이지 http://magugan.co.kr
양주=전 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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