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허허 웃기는 힘들겠지만…

  • 입력 2006년 12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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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KCC 허재 감독이 현역 때 일이다.

삼보(현 동부)에서 뛰던 그는 당시 사령탑이던 최종규 감독에게 “경기 전 라커룸에 좀 천천히 들어오시라”고 엉뚱한 부탁을 했다. 느지막이 모습을 드러내야 기다리던 취재진과 경기 관계자들에게 권위가 선다는 이유에서였다. 자존심 강한 허 감독 특유의 성격이 드러나는 일단이다.

그런 그가 이끄는 KCC가 올 시즌 꼴찌를 헤매고 있으니 그의 속은 과연 어떨까. 시즌이 절반도 더 남았는데 ‘KCC를 뺀 나머지 9개 팀이 혼전 양상이다’라는 얘기가 들리니 참담한 심정일 게다. 스트레스가 심한 탓인지 요즘 부쩍 심판에 대한 항의도 늘어났다. 누구에게 터놓고 고민을 말하기 힘든 고독한 자리를 실감하는 허 감독은 그나마 용산중 선배로 절친한 사이인 모비스 유재학 감독, 동부 전창진 감독에게 하소연할 때가 많다.

유 감독과는 최근 전주 홈경기 전날 밤 소주나 한잔하자며 만나기도 했다. 전 감독은 자정이 지난 늦은 시간에 허 감독의 전화를 받고 위로를 해 줬다. 유 감독과 전 감독은 모두 “허 감독이 준비를 철저히 했는데 용병과 이상민, 추승균이 번갈아 다치는 바람에 최악의 시즌을 맞았다”고 말했다.

KCC의 부진은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현대를 인수한 KCC는 해마다 꾸준히 상위 성적을 냈기 때문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후순위로 밀려 우수 유망주 영입에 실패했고 주전들은 고령화로 하강 곡선을 그렸다. 세대교체와 팀 재편의 어려운 시기에 허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이런 환경에서 KCC 고위층은 허 감독에 대한 신뢰가 높다. 올 시즌 종료 후 2년 계약 기간이 끝나지만 무조건 재계약한다는 방침이다.

허 감독으로서는 나름대로 이번 시즌에 충실하면서 젊은 선수들의 실력을 키우면 된다. 허 감독이 등장하는 KCC의 TV CF에는 ‘즐거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앞날을 내다보는 여유야말로 혹독한 한 해를 보내는 허 감독에게 필요한 기술일 것 같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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