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KIA)이 친 파울볼을 주운 것은 열 살 정도 된 소년이었다. 그런데 한 어른이 구경을 하겠다며 공을 낚아채서는 멀리 도망을 가버렸다.
소년은 울음을 터뜨렸다. 주변이 웅성거렸고, 한 아주머니가 소년의 손을 잡고 그 어른을 쫓아갔다. 그 남자는 난감해하며 공을 다시 내놓았다.
일 년이나 지난 마당에 왜 이렇게 사소한 얘기를 꺼내는가 하면 아직도 소년의 미소가 잊혀지지 않아서다.
그 소년은 환한 얼굴로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공을 받았다. 주변의 친구들은 축하를 건넸다. 아주머니는 뿌듯한 얼굴이었고, 현장 직원은 소년과 친구들에게 기념품을 나눠 주었다. 그 기억 하나로 소년은 아마 평생 야구팬으로 남을 것이다.
필자는 유년기를 남쪽 지방에서 보냈는데 겨울마다 전지훈련을 위해 찾아오는 선수들의 사인을 받는 게 큰 즐거움이자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한국에선 점점 이런 즐거운 기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비시즌이 되면 일본 선수들은 ‘야구교실’을 열어 어린이 팬들과 만나 추억을 선물한다. 21일에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21명이 합동 야구교실을 열어 1000명의 팬과 만났다. 20일에는 롯데의 최고 스타 후쿠우라 가쓰야, 16일엔 오치아이 히로미쓰 주니치 감독의 야구교실이 성황리에 펼쳐졌다.
시즌 중에도 마찬가지. 이승엽(요미우리)은 “빽빽한 일정 중에 하루 쉬는 날이 있었는데 선수단 전체가 초등학교의 집단급식 행사에 참가해야 했다”고 말했다.
요즘 한국 프로야구계는 농협의 현대 구단 인수 실패로 어수선하다.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것은 프로야구의 인기 하락이다. 연령층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더욱 심각하다. 그들에게는 야구와 관련해 추억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조그만 정성에 팬들은 감동한다. 돈으로 프로의 자존심을 앞세우는 대신 자라나는 어린이 팬들에게 꿈과 추억을 선사하는 선수가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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