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하루에 4차례나 야구경기를 볼 때도 있다. 야구 선수의 집에 찾아가 밤새 선수의 부모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만 활동한다.’
바로 ‘야구 스카우트’다. 이들은 팀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숨은 미다스의 손.
스카우트는 프로야구 시즌과 각종 아마추어대회가 끝나는 겨울철에도 휴일이 없다. 전국을 돌며 유망주를 물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8개 구단의 스카우트 담당자는 20여 명. 대부분이 선수 출신이다. 야구 유망주를 발굴하며 ‘제2의 야구 인생’을 꽃피우는 스카우트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아마대회 붙어 살고 피 말리는 설득 작업
LG 유지홍(45) 스카우트 팀장은 요즘 경남 진주와 남해시, 전남 여수시 등을 순회하고 있다. 때로는 필리핀 대만 태국 등 해외를 다녀오기도 한다. 겨울 전지훈련 중인 고교 야구선수들을 탐색하기 위해서다.
“10년 전만 해도 고교 선수 10명 중 9명은 대학에 가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프로팀을 선택하는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대학 졸업장보다 돈이 중요한 시대가 된 거죠.”
스카우트 담당자들은 초중고교 아마추어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야구장에 살다시피 한다. 선수의 체형과 움직임을 꼼꼼히 살핀다. 일단 합격점에 들 만한 선수가 눈에 띄면 그때부터 스카우트 담당자는 바빠진다. 선수와 부모를 만나 피 말리는 설득 작업을 벌인다.
스카우트는 ‘대어’라고 판단되면 선수의 집을 매일 찾아간다. 다른 프로구단 스카우트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새벽까지 집 앞에서 부모를 기다리기도 한다.
선수와 부모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2군에라도 입단시켜 달라”는 읍소형부터 “우리 아들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가 될 만한 선수이니 억대 계약금은 받아야 한다”는 배짱형 등. 그러나 프로에 입단한 선수들의 희비는 엇갈린다. 아마추어에서 스타플레이어였다고 해도 프로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스카우트들의 얘기다.
스카우트가 유망주를 영입해 성공하면 ‘코치의 공’이 되지만 실패하면 ‘스카우트의 책임’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스카우트 경력 19년째인 현대 김진철(50) 스카우트 부장은 “투수 정민태가 입단하자마자 팔꿈치 부상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자 구단에서는 ‘왜 권명철(두산)을 영입하지 않았느냐’는 질책이 쏟아졌다. 하지만 민태가 재기한 뒤 팀이 우승하면서 ‘면책’이 됐다”고 털어놨다.
물론 선수에서 스카우트로 전업하면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1985∼90년 MBC, LG 내야수로 뛰다 LG 스카우트로 11년간 활동한 유지홍 스카우트 팀장은 “처음 스카우트가 됐을 때 문서 하나도 제대로 만들 줄 몰라 진땀을 흘렸다”고 회상했다.
1983∼92년 삼성, 롯데에서 통산타율 0.331을 기록하며 ‘타격의 달인’으로 불렸던 삼성 장효조(51) 스카우트는 “스카우트가 팀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선수 시절에는 몰랐다”며 “유능한 선수를 영입해 팀 전력이 좋아질 때 진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007 작전’…유망주 부모에 수개월간 문안인사
스카우트가 유망주를 영입하는 과정은 ‘007 작전’을 방불케 한다. 상대팀에 알려지지 않아야 하고 고교생의 경우 대학과 경쟁해야 하는 탓이다.
1993년 신일고 3학년이던 김재현(SK)은 연세대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LG 유지홍 스카우트 팀장은 그해 거의 매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김재현 집으로 출퇴근해 김재현과 그의 부모에게 안부 인사를 했다. 수원 본가 대신 처가(상계동)에서 수개월을 머물렀을 정도.
김재현이 청소년대표로 일본으로 떠났을 때 유 팀장은 부모를 설득했다. “재현이 입으로 대학을 선택한다고 하면 포기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부모와 함께 일본 오키나와로 날아갔다. 유 팀장은 ‘보안’을 지키기 위해 아내에게도 지방 출장을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러한 지극정성이 통했는지 김재현과 부모는 LG와 입단 계약을 했다. 김재현은 2005년 LG에서 SK로 이적했다.
이병규(주니치)는 장충고 재학 시절 강혁과 라이벌 관계. 강혁은 두산으로부터 1993년 당시에는 파격적인 계약금 5000만 원을 받았다. 유 팀장은 이병규에게 “자존심을 세워주겠다”며 ‘5000만+10원’의 계약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병규는 프로 대신 단국대로 최종 결정했다. 이병규는 1997년 4억4000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LG에 입단했다. 4년 만에 8배가 넘는 몸값을 받은 셈.
현대 김진철 스카우트 부장은 “1996년 인천고 유격수로 활동하던 박진만을 거의 납치하다시피 하며 현대에 입단시켰다”고 밝혔다. 박진만은 인천고에서 고려대로 입학하려 했으나 현대에서 설득해 프로행을 택했다. 박진만은 2005년 삼성으로 이적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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