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서 자라는 곡식들/밭에서 자라는 보리 밀/
콩 녹두 수수알갱이여
저 먼 푸른 벌판으로/흩어진 마음을 불러 모아/
훨훨 날개 달아 보내노라면
노래의 둥근 씨앗들이여/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의 몸부림이여
<김준태 ‘아름다운 것들은 왜 둥글까’ 부분>》
○규칙 - 급소치면 반칙… 공격도 손-발바닥으로
택견은 둥글다. 곡선이다. 무릎을 굽혔다 폈다 굼실굼실, 몸을 버드나무처럼 휘었다 폈다 능청능청…. 그저 보기만 해도 흥이 난다. 그뿐인가. 몸을 좌우로 흔들며 우쭐우쭐, 어깨를 들췄다 놓았다 으쓱으쓱…. 어느 땐 농악 춤사위 같고, 어느 땐 탈춤을 겅중겅중 추는 것 같다. 택견엔 살기(殺氣)가 없다. 모든 몸짓엔 반드시 ‘멈칫거리는 완충동작’이 숨어 있다. 발차기도 곡선으로 들어간다. 반면 태권도 발차기는 직선적으로 짧게 끊어 찬다.
택견의 특징은 ‘는지르기’에 있다. 는지르기의 ‘느’는 ‘무르다, 느리다’는 뜻.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그만큼 는지르기는 한순간 힘을 절제해야 한다. 택견은 상대 급소를 치지 않는다. 급소를 치면 그건 반칙이다. 그 대신 이마, 옆구리, 허벅지, 어깨 등과 같은 곳을 목표로 한다. 공격자도 손바닥이나 발바닥같이 부드러운 부분으로 공격한다. 내 몸의 부드러운 부위로 상대 몸의 단단하고 비교적 안전한 곳을 공격하는 것이다. 발바닥으로 상대 발목 복사뼈를 쳐서 넘어뜨리거나(안우걸이), 발바닥으로 상대 뺨, 어깨, 허벅지 등을 밀쳐내듯이 차는 것(곁치기)이 바로 그렇다. 굼실과 능청의 완충동작이 없는 ‘곧은 발질’은 반칙이다. 택견에서는 어떤 기술도 가능하지만 반드시 는지르기여야 한다. 하수들은 상대 다리를 차고, 좀 한다 하는 자들은 상대 어깨를 차고, 고수는 상대 상투를 떨어뜨린다.
택견은 상대 무릎 이상의 부분을 바닥에 닿게 하면 이긴다. 두발차기로 상대를 두 걸음 이상 물러서게 해도 이긴다. 발질로 목 이상의 부위를 공격하여 상대의 균형을 현저하게 무너뜨려도 마찬가지.
택견의 매력은 겨루기에 있다. 겨루되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손질이나 발질엔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들어 있다. 겨루기가 판막음되면 서로 덕담을 나눈다. 마을 축제 때 ‘누가 고수인가’ 한판 겨뤄 본 것뿐이다. 단옷날 씨름과 함께 성행한 것도 그런 이유다.
○효과 - 유연해지고 순발력-민첩성까지
요가 강사 부부인 정건(34) 최하란(30·이상 3품) 씨는 가끔 집에서 ‘부부겨루기’까지 한다. 최씨는 “요가는 정적인데 택견은 동적이고 순발력과 민첩성이 길러진다. 또한 관절에 전혀 무리가 없다. 발차기가 참 멋있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함께 배우는 경우도 있다. 권순홍(43·3품·교사) 씨와 용환(11·5품) 군 부자가 그 주인공. 권 씨는 “몸의 피곤이 스르르 풀린다. 무엇보다도 아들과 같이 땀을 흘리며 대화까지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용환 군은 “가끔 아빠 폼이 이상할 땐 내가 지적해 준다”며 웃는다.
강전희(40·교사) 씨는 두 아들 이창무(7) 승무(5) 군과 함께 배운 지 한 달 된 무품 실력. 강 씨는 “부드러운 데다 운동까지 되니 안성맞춤이다. 아이들이 우리 전통을 몸에 익힐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두 달 반 경력의 유인갑(54·8품·자영업) 씨는 6개월 전 대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두 달 전부터 택견의 매력에 빠졌다. 유 씨는 “소화도 잘되고, 피곤이 사라졌다. 몸의 유연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환하게 웃는다.
○특징 - 발놀림 삼각꼭짓점 오가며 중심이동
택견은 흥겹다. 무술과 유희가 곁들여져 있다. 필살의 의지로 발길질을 하지 않는다. 몸 보호 장구도 없다. 그만큼 절제하고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 그러려면 몸이 뻣뻣하면 안 된다. 움질움질 굼실굼실 능청능청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몸을 이완해야 한다. 발놀림은 모든 무술의 원형질(DNA). 택견의 발놀림은 ‘품자(品字)밟기’다. 삼각형, 혹은 역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오가며 중심이동을 한다. 이때 양손의 활갯짓은 평형감각을 유지하려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택견의 기합 소리는 독특하다. “이∼크!” “이∼크!”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생명의 소리다. “이∼크!” 한 번 할 때마다 단전이 울리고 그것은 둥근 몸짓으로 바뀐다. 택견은 ‘숨’과 ‘춤’ 사이에 있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본때보이기’ 겨루기 전 상대 기죽이는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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